‡ 오늘의 이동루트

떼르미니 역(바티칸 투어 집결) - 바티칸 박물관 - 성 베드로 성당 - 성 베드로 광장 - 숙소 -  떼르미니 역(야경투어 집결) -  트레비 분수 - 빵데온 - 나보나 광장 - 산딴젤로  성 - 숙소 
 


- 구글 지도 링크(같이보세요)
http://maps.google.com/maps/ms?msa=0&msid=110906395392392108239.000462ee98f0c3f83966b&ll=41.901239,12.474332&spn=0.013895,0.032938&z=16

- 금일 숙소 : 
가고파 민박 in Roma
- 차량 이동거리(금일 0 km, 누적 9,460 km) 

- 도보 이동 경로(야간투어)



오후 투어의 시작은 벨베데레의 뜰(Cortile del Belvedere) 부터 시작한다.

벨베데레의 정원으로 가는 복도 양편에는 그리스 로마시대의 석상들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다.
그런데 원본이 잘 보존 된것보다 대부분 얼굴이 회손된 것들이 많다. 
전쟁이 많았던 시대에 다른 도시에 쳐들어가 당시 해당 도시의 수호신의 석상을 훼손했다고 한다.


정원 앞에 있던 큰 술잔처럼 생긴 이것은??
로마의 황제들이 사용했던 욕조라고 한다.






벨베데레의 뜰(Cortile del Belvedere)에는 우리가 책에서 보던 익숙한 석상들이 많이 있었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 석상이다.


직접 보면 돌로 변하기 때문에 페르세우스는 방패에 반사된 메두사의 얼굴을 보고 그 목을 베었다고 한다.



아폴로신의 석상. 기원전 5세기에 제작된 그리스의 청동상을 복사한 것이다.


벨베데레의 뜰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라오콘(Laocoon)이다.
기원전 50~150년사이에 제작된것이다.
라오콘은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군이 남기고간 목마를 성으로 가져오는 것을 반대해서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보낸 뱀에 의해 그 아들과 같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들은 그리스 편인 것은 당연한 듯..  ㅋㅋ


라오콘 팔이 발견되기전에 상상했던 라오콘의 완성도다.

라오콘이 발결된 당시부터 오른쪽 팔이 부러져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오른쪽 팔이 윗 사진처럼 이렇게 펴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켈란 젤로만이 몸통의 근육이나 뼈의 형상으로 봐서 팔이 뒤로 젖혀져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근에 라오콘의 팔만 다시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 보니 미켈란 젤로의 말처럼 팔이 뒤로 젖혀진 상태였다..


그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뮤즈의 여신의 방(Sala della Muse)이다.
이곳에서는 삐에따, 라오콘과 바티칸 3대 조각으로 평가 받는 토루소(torso)라는 작품이 있다.
토루소는 이탈리아어로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통만 남아있는 조각을 말한다.


토루소는 기원전 1세기경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인 아폴로니우스(Apollonios)의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이 조각은 미켈란젤로가 발굴해 내었는데 너무나 정밀한 인체 표현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교황은 이 '토루소'를 미켈란젤로에게 복원할 것을 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이 상태의 그대로 있는 것이 훨씬더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거부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이 조각에 많은 영감을 받아서 시스티나 예배당에 그가 그린 '최후의 심판'
의 예수의 몸통은 바로 이 조각의 형상을 그대로 그린것이라 한다.
또 로뎅(Rodin)의 생각하는 사람 역시 몸통은 바로 이 형상을 차용 한것이라 한다.



원형 전시관(Sala Rotonda)에 있는 황제의 욕조..  네로 황제가 사용했었다나..


욕조위에는 돔형의 천정이 있는데..  천정에 있는 장식은 조각한것이 아니라 그린것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입체적인 형상에 마치 조각된 것처럼 보인다.


원형전시관과 연결된 그리스 십자가형 전시관(Croce Greca)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의 석관이 있다.
그녀는 로마가 크리스트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이다.


헬레나 성녀 석관 옆에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줄이 쳐져 있는데 , 얼핏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왜 못들어가게 하나 이상하게 생각된다.



알고보니 파란색 대리석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라나..
파란색을 띠는 대리석은 엄청 비싸단다..  이 모든 것들은 그 색의 대리석을 찾아서 모자이크 식으로 만든것..


아치형 천정 역시 조각된것이 아니라 그려진것.. ㅋㅋㅋ


교황청 령을 그린 지도의 방이다. 역시나 아치형 천정은 모두 그림으로 그린것..
입체감이 뛰어나게 그려서 자세히 봐도 긴가 민가 하다. ^^;;


그레고리오13세 교황 당시 40여개의 지도를 그리게 했다... 



천정이 음,양각으로 조각된것이 아니라 그린것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문밑에서
정면의 천사조각으로 보이는 것을 위로 올려보는 것..  양각으로 튀어나와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평하다.

드디어 라파엘로의 방에 왔다. 
이 방들은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쓰던 방이었는데  라파엘로가 방을 그림으로 장식한 이유로
'라파엘로의 방'이라고 불린다.


라파엘로의 방은 4개의 방으로 구성되어있다.
- 콘스탄티누스의 방(Stanza di Costantino)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업적을 그린 그림들로 장식된 방
- 보르고의 화재의 방(Stanza dell' Incendio di Borgo) : 9세기의 교황 레오 4세때 화재가 발생했을때 기적을 일으켜 진화하는 장면이 그려져있는 방
- 엘리오도로의 방(Stanza di Eliodoro) : 라파엘로와 페루찌가 같이 벽화를 작업한 방..
-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e) : 가장 유명한 아테네 학당이 있는 방


라파엘로의 방은 모두 프레스코 벽화로 되어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방은 라파엘로가 입으로 그린 그림의 방이라고 설명해준다.
그림은 제자들이 그렸고 지시만 했다고 한다.
덕분에 라파엘로는 37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많은 작품을 그려낼수 있었다.


아테네 학당..  워낙 그림이 크기때문에 한화면에 그림을 찍을수가 없었다.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인물의 얼굴은 라파엘로의 동시대 화가들이 었다.

가운데 붉은 옷을 입은 플라톤은 다빈치 얼굴을
턱을 괴고 혼자 앉아 있는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넣었다.
땅에 뭔가를 그리는 사람은 기하학으로 유명한 유클리드인데 
성베드로 성당의 건축을 담당한 브라만테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라파엘로가 이곳에 그림을 그릴수 있었던 것은 브라만테의 추천에 의해서였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미켈란젤로는 1년전에 바티칸에 와서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었다.


아테네 학당에는 화가(라파엘로)와 그의 여자친구 모습도 그려넣었는데, 붉은 옷을 입고 사람사이에 있는
인물이 바로 라파엘로다.


흰옷을 잎은 화가의 여친

그런데 이 방은 4방은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에는 모두 이 두사람의 얼굴이 들어있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반대편 벽쪽을 돌리면 라파엘로의 시선과 맞닿아 있다.
결국 모든 그림에서 그들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셈이다. ㅋㅋㅋ

꽃미남이었고 친절한 성격에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라파엘로는 젊은 나이에 죽게 된것도
여자를 너무 밝혀서가 아니었을지..    흠..


계단위에 있는 주의 표시.. 재밌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모조품이 아닌 진품이라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자세히 보지않고 쉽게 지나친다고 한다' 고
설명해주시는 정 가이드님..


드디어 바티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수 있는 시스띠나 성당(Capella Sistina) 성당에 왔다.
들어오자마자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의 웅장한 모습이 모든 사람을 압도하고 있다.

사진 기록을 남기고 싶지만  이곳은 바티칸에서 유일하게 사진 찰영이 안되는 장소다.
그림의 복원을 일본의 NHK가 지원을 하면서 찰영을 하지 못하는 조건을 걸었다는 것이다.

말을 들어보니 여기서 사진을 찍다가 걸리면 바로 쫒겨 나게 되는데, 약간의 과장이 있겠지만
관리인들이 서양사람들은 잘 안잡는데, 동양사람들은 걸리는 즉시 잡아서 쫒아낸다고 한다.

천정에 그린 천지창조는 굴곡이 심한 예배당 천정에 인체 비례를 고려하여 밑에서 보는 사람이
평면에 그린것 처럼 보이게끔 그렸다.  실제 위에 천정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의 인체 비율이 맞지 않아
이상하게 보인다고 한다.

최후의 심판은 한쪽 벽면에 있는 그림인데
이 그림을 제작할 때는 교황청에서 성베드로 성당 공사를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신교 분리를 위한
종교 분쟁이 일어나던 시기이다.
미켈란젤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최후의 심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생각했다고 하며,
작품의 모티브는 같은 피렌체 출신의 작가 단테의 신곡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와 성베드로 성당으로 가는길..  


꾸뽈라(돔)위로 올라가려면 화살표 방면으로 가면 된다.


드디어 성당에 들어왔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처음에는 브라만테가 시작하고 라파엘로와 미켈란 젤로에게
넘겨졌다.

성당을 여럿 봐왔지만 이곳과 비교 자체가 안된다. 너무나 화려하고 웅장하다.
이곳에서 대충 금빛으로 색이 돈다면 그냥 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 이곳 성당을 가이드는 와우(Wow) 성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기에..
일단 규모면에서 이곳은 세계 최대크기의 성당이다.

그리고 많은 회화 작품으로 보이는 대형 그림들이 걸려있다.


박물관 회화관에서 보았던 라파엘로의 '그리스도의 변용'이 여기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회화 작품이 아니라 모두 모자이크다... 모두 해당 색깔의 대리석을 찾아서 색에 맞추어서 붙여 놓은 것..



얘도 역시 모자이크..  의심하지 말것 !!
이런 형형 색색의 대리석을 어디서 찾아다 놓았는지..  대단하다고 말할수밖에 없다.


대리석 조각들도 쉽게 볼수 있고..


꾸뽈라(돔)위로 올라가는 사람들인가 보다.  저 글씨는 모두 히브리어로 베드로의 말을 써놓은것이다.
글씨의 배경의 금빛은 모든 진짜 순금이다.  글씨 하나의 높이가 3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성당 모든 벽에  글씨를 써두었으니 얼마나 많은 금이 여기에 들어갔는지 알만하다.

가이드분의 설명으로는 총 300톤 이상의 금이 이곳에 칠해졌다고 한다.
면죄부를 팔게 된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을듯하다.




성당 중앙에 있는 스테인 글라스 처럼 보이는 원형 창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스테인 글라스가 아니라 투명 대리석이다.  
투명 대리석은 그 가치를 해야릴수 없는 엄청나게 귀하고 비싸서  가치를 따질수 없는 것이라고..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



중앙에는 베르니니가 만든 바로크 스타일의 청동 기둥이 있다.   이 중앙에는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이 당시에는 청동역시 비쌌기에 청동 기둥을 만들기 위해 빤데온에 있는 문을 뜯었다고 한다.



한쪽구석에는 성 베드로의 동상이 있는데 발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때문에 항상 사람들이 줄서있다.
한쪽 발만 반질거리는 것은 어쩔수 없고..


미켈란 젤로의 삐에따(Pieta).. 한 사람이 이 조각을 망치로 홰손한 이후에는 유리막으로 막혀있다.
미켈란젤로가 23살때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굉장히 호평을 받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알아주지 않는 듯 하자 명예욕이 강한
그는 나중에 마리아상 가슴 부근에 자기 이름을 새겨넣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를 두고두고 죽을때 까지 후회했다고 한다.



성당에서 나와 광장쪽으로 왔다.  한쪽 옆에는 삐에로를 연상시키는 근위병들이 서있다.
미켈란젤로가 디자인 했다는 스위스 근위병의 복장...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옷이 유지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찰복을 조선시대 포졸 복으로 하면 웃기겠지??  
그런데 얘네들은 왜 안웃긴거야..  

당시에는 스위스 사람들이 가난했기 때문에 용병으로 많이 팔려 나갔다.
그런데 지금도 근위병이 되려면 스위스 국적을 가져야 하는것인지 궁금해 진다.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고 우측편에 교황이 머물고 잇는 곳이 있다.
손가락방향의 창이 바로 교황의 숙소..
교황은 하루에 16시간 정도 일을 하는 아주 힘든 직업이란다.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교황이 되는 거라나..  ㅋㅋ


광장 중앙에는 오벨리스크가 높게 서있다.  이것은 로마 황제 칼리큘라가 이집트에서 가져온것이다.


광장에서 본 성베드로 성당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투어하게 되면 엄청나게 많이 걷게 된다.  



가이드 님이 기분이라며 아이스크림을 쏘셨다...  
엄청나게 큰 아이스크림.. 역시나 개눈 감추듯이 먹었치웠다.
판매원중 한명이 한국어를 꽤 잘해서 재미있었다.  (의사 소통 수준은 아니구.. ^^;;)

(3)에서 계속


‡ 오늘의 이동루트

떼르미니 역(바티칸 투어 집결) - 바티칸 박물관 - 성 베드로 성당 - 성 베드로 광장 - 숙소 -  떼르미니 역(야경투어 집결) -  트레비 분수 - 빵데온 - 나보나 광장 - 산딴젤로  성 - 숙소

 

- 구글 지도 링크(같이보세요)
http://maps.google.com/maps/ms?msa=0&msid=110906395392392108239.000462ee98f0c3f83966b&ll=41.901239,12.474332&spn=0.013895,0.032938&z=16

- 금일 숙소 : 
가고파 민박 in Roma
- 차량 이동거리(금일 0 km, 누적 9,460 km) 
- 도보 이동 경로(야간투어)






오늘은 바티칸 시티 가이드 투어를 한다. 
예약은 어제  민박집 주인 아저씨께 부탁 했다.  

아침 식사후 우리는 떼르미역 집결 장소로 나갔다.
EU Guide Club이라는 여행사였다. 
홈페이지
http://guideclub.co.kr/  에서 예약하면 된다.

우리는 이번 현지에서 가이드 투어를 몇번 받았었고, 나름대로 다들 괜찮으신 분들이
열심히 해주셔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바티칸 투어는 Best of Best 였다.


저 벽 너머가 바티칸 시티..


아침 이른 시간부터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줄이 상당히 길었지만 빨리 빠지는 편.. 30분정도 기다렸다.



난데 없이 가이드 아저씨가 여기는 이탈리아가 아니고 엄연히 다른 나라라고 얘기하며
다 가져 오셨겠지만 혹시 여권 가져 안가져 오신분 손들어 보라고 한다.

'필요없을듯 해서 숙소에 두고 왔는데..'   긴장하며 손을 들었는데..나뿐 아니라 여러명이 안가져 왔다. ㅠㅠ

그런데 .. 필요 없단다..    

완.전. 낚.였.다..   -_-+   

그런데 이것은 이곳 투어를 하는 모든 가이드의 레파토리.. 
옆에 노란풍선 여행사 가이드도 똑같은 얘기를 사람들을 낚고 있다.
ㅋㅋㅋ


높은 벽과 감시 카메라가 이곳이 로마 내의 다른 국가임을 실감하게 된다.


바티칸 박물관으로 입장하는 문.. 


처음엔 이처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공항처럼 짐검사를 한다. 
그리고 표를 구매하고 들어가면 삐냐 정원(Corile della Pigna)이 나온다. 

입장료는 1인당 14유로.
대영박물관과 루브루 박물관은 대부분 약탈해온 물건을 전시해놓은 반면..
이곳은 모두 교황청에서 후원한 작품들이기에 양심껏 입장료를 받을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영박물관의 경우 입장료가 무료이다.)

입장 수입으로만 70조원의 수익을 올린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밖에


삐냐 정원에 있는 구형 조형물과 뒷편의 성베드로 성당의 꾸뽈라(돔)가 보인다.


삐냐 정원에 있는 교황청 마스코트, 솔방울이다. 
삐냐는 솔방울을 뜻하니 이 정원을 솔방울의 정원이라고도 불러도 된다.
이 솔방울의 크기는 4미터에 달하며 분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구형 조형물은 지구처럼 회전하고 있다.   병들어가고 있는 지구를 상징하고 있다.


삐냐 정원에서는 미켈란 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가 있는 씨스띠나 성당(Capella Sistina)에서
혼잡을 방지하고자 그림에 대한 설명을 정원에서 미리 하고 들어갈수 있도록
그림 판텔이 있는 안내판을 곳곳에 만들어 두었다.



안내판의 그림들은 이런것들...


특히나 아침부터 햇볓이 따갑기에 그늘에 있는 안내판의 경우는 특히나 붐빈다.

다행히 발빠른 가이드분의 순발력으로 우리도 그늘에 앉아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수 있었다.
무려 1시간이 넘는 강의 수준의 설명...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너무 재밌게 해줘서 다들 즐거워 했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미켈란젤로의 몸을 망쳐 가면서까지 만든 혼신의 역작이었다.
천지창조를 그린후 그는 허리와 목이 망가져 평생 구부정 하게 다녀야 했으며,
예술가에게는 치명적인 안구 손상 까지 입었다.

또한 최후의 심판은 60이 넘은 노년에 그린것..
역시 교황이 그림을 부탁하자 미켈란 젤로는 자신은 화가가 아니라 조각가이며,
더구나 이미 나이가 많아서 힘들다  라는 이유로 거절을 했지만
교황의 거듭된 부탁으로 결국 수행을 하게 되었다.

일설에는 그의 평생 라이벌이었던 라페엘로가 그린 그림 위에 덧 그리는 것이라는
얘기에 자존심 강한 그가 허락했다는 얘기가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게되는 것은 삐에타(Pieta) 이다.
이것은 성당안에 있는 원본의 복재품.. 앞을 볼수 없는 맹인들을 위해 손으로 만지게끔 만들어진것이라 한다.


먼저 우리가 간곳은 피나코테카(회화관,Pinacoteca) 
역대 교황들이 모아놓은 회화 작품들이 있는 곳이다.


르네상스 이전의 회화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는 'EU 가이드 클럽'의  정 가이드님..


가이드가 이 그림을 잘 보라고 해서 봤는데, 왜 잘보라고 했을까??
오른편의 파란옷의 인물이 개그맨 박명수와 닮았다고..  헉~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마지막 작품인 '그리스도의 변용'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3대 거장으로 일컬어 지는 인물..
일반적으로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그가 죽은 년도까지로 보고 있을 정도로 그의 업적은 대단했다.


괴팍하지만 예술적인 가치는 인정 받았던 까라바조의 작품 '그리스도의 매장'
발가락에 떼까지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내어 당시에 그를 안좋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사진이 흔들려 영 보기는 않좋다.


오라치오 젠델레스키의 유디트.. 사실 피렌체에 있는 그의 딸, 아르테미시아 젠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가 더 유명하다.
아르테미시아 젠델리스키는 최초의 여성 화가이면서 특히나 위의 그림을 그린 까라바조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 까라바조 풍의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이들 그림 외에도 다빈치의 '고뇌하는 성 제롬' 같은 그림이 이곳 회화관이 있다.



바티칸에서는 마땅히 먹을만 한것이 없다.   카페테리아에서 그냥 이런 피자같은거나 먹을뿐..
'사진을 찍어두어야지' 라고 생각했다가 음식이 나오자 잠시 잊고 한입 문 상황..  ^^;;


가이드가 설명하는 것을 더 정확하고 잘 듣기 위해 이런  무전기가  한사람당 하나씩 지급되었다.



바티칸 박룰관내의 카페테리아 전경..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오후 투어를 기다리고 있다.


식사후 삐냐정원으로 왔다.


오후투어 시작은 역시나  삐냐정원에서 사람들이 집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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