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라인 페리 선착장➜감라스탄 지구(스토르토에르 광장, 대성당, 왕궁)➜국회의사당➜유르고르덴 섬(바사호 박물관, 스칸센 박물관)➜세르겔 광장➜회토리에트(스톡홀름 콘서트 하우스)➜중앙역➜초원의 집(한인민박)


◎ 구글지도 링크(Shift+마우스클릭 해서 같이 보세요)
http://maps.google.co.kr/maps/ms?ie=UTF8&hl=ko&msa=0&msid=216926685947982424011.0004636900e13e3b5d97e&ll=59.327323,18.079376&spn=0.038093,0.13175&z=14

◎ 금일 숙소 :
초원의 집 (in Tullinge)
◎ 금일 이동루트 




헬싱키(Helsinki)에서부터 타고온 페리 신데렐라 호를 뒤로 하고.. 


스톡홀름(Stockholm) 시내를 향해 이동한다.


페리터미널에서 바다 너머로 스톡홀름의 TV방송타워(Kaknastornet)가 보인다.
170m에 달하는 타워는 방송 송신용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서울의 남산타워와 마찬가지로 스톡홀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며, 전망대 중 하나다. 

여행 계획을 세울때는 꼭 가보려고 했던 곳이었는데, 막상 이곳에서는 가보진 못하고 멀리서 사진으로만 남겨오게 되었다.



헬싱키로 넘어갈때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갔던 감라스탄 지구(Gamla Stan)로 향했다. 

감라스탄 지구에서 스탄(Stan)은 도시나 마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스탄과 함께 스웨덴의 지명에서 흔히 볼수 있는 홀름(Holm), 이나 홀멘(holmen)은 섬을 말한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Stockholm) 역시 14개의 섬과 바다와 운하, 호수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보니 뒤에 홀름(-holm)이라고 불리었을 것이다. 


감라스탄 지구와 인접한 슬루센(Slussen) 지역에는 이곳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카타리나 엘리베이터(Katarinahissen)가 있다.
이 엘리베이터는 슬루센(Slussen)지역과 고지대인 쇠데르말름(Sodermalm)지역을 연결한는 특색있는 교통수단이다. 
저 엘리베이터만도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슬루센 지역은 해안가 중심의 보행로가 있는 곳으로 펍과 레스토랑이 많아 밤이면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최근 이곳에 대한 리제너레이션 마스터플랜 (Regeneration masterplan)공모가 실시되었고, 노먼포스터(Norman Foster)의 작품이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용산국제업무단지 설계 공모에서는 아쉽게도 탈락했지만 런던에 있는 스위스 리 보험회사 빌딩 건설 과정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다. 심지어는 영국에서는 작위도 가지고 있다.

출품작은 <포스터+파트너스(Foster and Patrners)>라는 회사명으로 출품되었는데, 이 회사는 노먼포스터가 설립한 회사이다.


슬루센 지역의 자동차 전용도로는 보행자 도로로 바뀔 예정라고 하며, 공모 당선작인 사진과 같이 멋지게 변신하게 될 예정이다.
자료 : http://www.fosterandpartners.com/

 


스톡홀름에서 메탈리카(Metallica) 공연을 하나보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뮤지션인지라 반갑다.


감라스탄 지구 입구에는 마치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기마상이 있다. 스웨덴의 국왕 칼 14세 요한(Karl XIV Johan) 국왕의 동상인데, 실제 그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수하장군으로 많은 전투에서 프랑스 군의 승리를 이끈 인물이었다.

나폴레옹 부하가 왠 스웨덴 국왕..?  ^^;;


동상은 뒷편의 리다르홀름 교회(Riddarholmskyrkan)의 첨탑과 잘 어울린다.


국왕까지 수입한 스웨덴과 칼14세 요한(Karl XIV Johan)국왕

나폴레옹의 부하가 왠 스웨덴 국왕??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칼 14세 요한 국왕(Karl XIV Johan)이 즉위할 무렵의 스웨덴은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기는 등 쇠락기를 걷고 있었다. 당시 차기 왕위 내정자였던 칼 아우구스트가 갑자기 급사해 버렸기 때문에 스웨덴의 귀족들은 차기 국왕을 해외에서 찾기 시작했다. 
쇠락기를 걷고 있던 스웨덴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능력 있고, 힘이 있는 지도자를 원했던 귀족들은 나폴레옹의 오른팔이자 황제 즉위후 프랑스군의 원수로 발탁된 인물인 베르나도트(Jean-Baptiste Jules Bernadotte)를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그를 국왕으로 앉히게 된다.  
바로 그가 칼 14세 요한 국왕으로, 현 스웨덴 국왕도 그의 후손이다.
프랑스인이었던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반 프랑스 연합군에 참가하여 프랑스 군의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고, 연합군의 승리에 공헌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퇴위한 뒤 그는 프랑스 국왕 자리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합군에서의 반 프랑스적인 행동들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나폴레옹과 등을 돌린 인물이었지만, 나폴레옹의 부하들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었다.



 차안에 있던 검정개..꽤 순해 보인다. 땅떵이가 넓은 나라답게 큰 개들을 많이 볼수 있다.


감라스탄 지구내의 바스테르랑가텐(Vasterlanggatan) 거리에는 기념품과 각종 소품 들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다.
당연히 관광객들로 붐빈다.  


스웨덴의 기념품 샵에는 살만한 것들도 꽤나 많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 다녀도 여기처럼 사고 싶은게 많았던 곳도 별로 없었던 듯 하다.


일단 북유럽에 왔다면 꼭 사가야 할 아이템중 하나인 고블린(Goblin) 인형..


고블린은 서양 민담에서 나오는 떠돌이 요정을 뜻하며 고대 그리스어 <코발로(Kobalos) : 장난꾸러기>에서 유래된 말로,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혹은 게임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캐릭터다.


스웨덴은 바이킹 후예의 나라답게 각종 바이킹 전사의 인형들도 종류가 많다.
여건만 된다면 이것저것 사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참고 있는 중이다. -_-


뭐니뭐니 해도 스웨덴의 기념품 샵에 빠지지 않는 말괄량이 삐삐..1969년도에 제작된 말괄량이 삐삐는 세대를 넘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스웨덴에는 전용 박물관 까지 있을 정도다.

7~80년대 세계 음악을 주름잡았던 아바(Abba)와 함게 스웨덴을 대표할수 있는 문화 상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슴인형..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엘크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역시 핀란드나 스웨덴, 캐나다 등 극지방과 접해 있는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도도가 가장 열광했던 양초..초를 켜면 위로 올라가는 대류열로 인해 위에 장식물들이 회전한다.

결국 얘네들은 현재 우리집에 와 있다. ^^;;  촛불을 켜주면 아이들이 특히 좋아라 한다.


특색있는 벽걸이 제품들..


오~  이거 나름 아이디어 상품인 걸..?


성에 대해 개방된 국가답게 관련 상품들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 매장이다. 최근 한류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상품은 여전히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세삼 느끼게 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구 캐릭터인 리락쿠마..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인기를 끌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보게 될줄은 몰랐다. ^^


어디나 이런 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꼭 있기 마련..


보디샵(The Body Shop)이나 세븐일레븐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볼수 있는 간판이 반갑다.


가게 쇼윈도에 여러 나라 언어로 쓰여진 안내판이 이색적이다.  


다양한 모양의 캔디들..이런 사탕들을 보면 어릴적 말괄량이 삐삐에서 나왔던 사탕들이 생각이 난다.


당시 삐삐는 엄청난 금화를 가지고 있는 부자였었고, 늘 사탕을 사서 애들과 나눠 먹었었지..  ㅋㅋ
힘도 세고, 어른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고, 돈도 많고,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수도 있고, 사탕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심지어는 하늘까지 날수 있는..삐삐는 당시 아이들의 로망이었다.
(특히나 당시 우리나라에서 볼수 없었던 형형 색색의 사탕들에 마음이 빼앗겼었던 1이다. ^^)  



대성당(Storkyrkan)의 첨탑 옆의 언덕위로 올라갔다.  


1279년에 만들어진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왕궁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옛부터 결혼식, 장례식, 대관식 등 스톡홀름의 주요 왕실 행사가 열렸다.


감라스탄 지구의 중심부 언덕에는 조그만 광장이 있다. 구 시가의 중심인 이 광장은 스토르토에르(Stortorget)광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1520년 <스톡홀름 대학살(Stockholm Bloodbath)>이 일어난 장소이다. 스톡홀름 대학살은 당시 북유럽을 지배하고 있었던 덴마크에 반대하는 스웨덴 귀족들을 잡아서 처형했던 사건이다.


이 조형물은 대학살 당시 우물이 있던 자리로, 당시 학살된 사람들을 이 우물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스톡홀름 대학살(Stockholm Bloodbath)>은 당시 북유럽을 지배했던 덴마크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스웨덴이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독립 후 스웨덴은 19세기 러시아가 강성하기 전까지 500년 동안 북유럽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광장 한쪽에는 구 증권거래소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현재는 노벨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노벨 박물관에는 노벨과 관련한 내용 뿐 아니라 노벨상 역대 수상자들에 대한 내용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광장 다른편에는 마치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옛 건물을 연상게 하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서 있어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하고 있다.

 

대부분 관광지 마다 특색있는 복장을 하고 있는 기념찰영을 해주는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인데, 노벨 박물관 앞에는 바이킹 복장을 한 여자들이 관광객과 기념찰영을 하며 돈을 받고 있다.


복장과 외모는 여성스럼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유쾌하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쾌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저 여성은 늘 행복할 듯 하다.

(3)에서 계속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프라하 오케이 민박)  ➜ 드레스덴(Dresden) ➜  숙소(베를린 마루방 민박)


구글 지도 링크(Shift+마우스클릭 해서 같이 보세요)
http://maps.google.co.kr/maps/ms?ie=UTF8&hl=ko&msa=0&msid=110906395392392108239.00046318ad894bf7d6032&ll=51.053737,13.735496&spn=0.00584,0.016469&z=17&iwloc=000490a7b6677fa689d6b

금일 숙소 : 
마루방 민박(한인민박 in Berlin)
이동 거리 : 금일 350km(누적 14,290km)  




츠빙거 궁전에서 극장 광장(Theaterplatz)으로 나왔다.   광장과 광장 주변의 건물은 드레스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모여 있는 곳이다. 

츠빙거 궁전을 나오자마자 우측편으로 대성당(Katholische Hofkirche)과 드레스덴 성(Dresdner Scholoss)이 보인다.
사진의 좌측편 건물이 대성당, 우측편 건물이 드레스덴 성이다.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도시 전체가 파괴되다 보니, 드레스덴 성은 1989에 부터 현재까지도 복원중 이다.
겉보기는 말끔해 보이는데 말이다.


드레스덴성과 대성당 반대편에는 젬퍼 오페라하우스(Semper Oper) 가 있다.  츠빙거 궁전의 젬퍼바우(Semperbau)와 마찬가지로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건물이다. 
바그너의 '탄호이저' 와같은 명작이 이곳에서 초연될 만큼 유럽에서도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이다. 

매년 5월~6월에 열리는 드레스덴 음악제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이 광장에 모여든다.



오페라 광장 중앙에는 청동으로 된 기마 동상이 있다.,


작센 왕 요한의 기마상이다.  


대성당과 드레스덴 성 사진..


네오 르네상스 양식의 드레스덴 성이 현재의 모습으로 탈바꿈 한것은 20세기 초이며, 베틴 왕조의 800주년 기념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작센왕국은 1차대전시 독일의 패전으로 사라졌지만 그때까지 베틴 왕조는 이 지역의 오랬동안 다스려 왔다.  


대성당(Katholische Hofkirche)은 작센 지방에서 가장 큰 교회이다.  츠빙거 궁전과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트 국왕 시절인 1754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지하실에는 작센왕족의 명문 가문인 베틴가의 묘가 있으며, 작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아우구스트 왕의 심장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요한 왕의 기마상 뒤로 츠빙거 궁전의 젬퍼 바우(Semperbau)가 보인다.  


엘베강(Ellbe)과 아우구수투스 다리.. 작센왕국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 답게 대성당에 그의 심장이 보관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의 이름으로 명명된 지명들이 상당히 많다.



엘베강 건너편의 신시가지의 모습..  뭐 내 눈에는 신시가나 구시가나 다 오래되어 보이는데 뭐가 차이인지..



대성당 옆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량 한대가 견인되고 있다. 
주변에 경찰들과 견인차량 운전자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모여 있다.


이 지역의 견인 차량은 주차된 차를 들어올려서 트럭 뒤에 싥게끔 되어 있다.



불법주차나 주차요금을 내지 않았거니 생각해서 자동차내 대쉬보드를 보니 정상적으로 주차료를 지불한 영수증이 있다.
왜 견인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우리차가 이렇게 견인 되었다면 최소한 2일 정도는 스케쥴에 타격을 입을텐데 라고 생각하니, 다시금 안전한 유료 지하주차장에 차를 두고 온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다시금 생각이 든다.



강변을 따라 대성당 옆으로난 계단을 오르면 브륄의 테라스(Bruhlsche Terrasse)라고 불리는 곳이 나타난다.


독일의 작가 괴테가 '유럽의 발코니'라고 불릴 정도로 이곳에서 내려다 보는 엘베강(Elbe)의 전망은 아름답기만 하다.
체코 프라하의 멋진 블타바 강도 엘베강의 지류이다.


브릴의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엘베강과 아우구스투스 다리(Augustus br).
아우구스투스 다리 건너편(신시가쪽) 하우스트 거리는 드레스덴 최고의 번화가이다.


브륄의 테라스는 원래 작센 왕 아우구스트 3세의 친구인 브륄 백작이 만든 정원이었다.  
여름철 나무그늘 벤치에 않아 엘베강을 내려다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시간이 훌쩍 가는 것도 모를 지경이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본 극장광장의 전망..   대성당과 젬퍼 오페라 하우스가 등장하는 극장광장의 야경은 더욱 환상적인 자태를 뽐낸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야경을 볼 기회는 없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여행 서적을 보며,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고 있는 도도.. 


건물사이로 보이는 예사롭지 않은 돔은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다. 


브륄의 테라스에서 구시가지 방면으로 내려가면 식당과 기념품가게 들이 즐비한 쇼핑 거리가 나타난다.


거리 너머로 드레스덴 성이 보인다.


거리에 세워져 있었던 멋진 자동차..  역시 자동차의 나라 답다.


프라우엔(Frauenkirche) 교회로 왔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이 교회에서 독일 개신교 교회로는 가장 큰 교회중 하나이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완파되었던 이 교회를 다시 재건하기 시작 한 것은 1993년도이다.  2005년도에 이 교회의 재건은 완성이 되었고, 상징적인 의미 때문인지 재오픈 한뒤 수 많은 사람들이 방문했으며, 2009년도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다녀갔을 정도이다.

교회 주변에 이 교회를 배경으로 기념 찰영을 한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프라우엔 교회 내부의 천정화.. 교회 천정은 외부 채광이 잘 되도록 설계가 되었다.


이곳의 내부 치장은 2004~2005년에 걸쳐 이루여 졌다. 비교적 최근에 재건된 덕분에 다른 성당처럼 어둡고 경건한 분위기 보다는 화사하고 깨끗한 느낌이 든다.  마치 우리나라 웨딩홀을 연상시키는 내부다.  

독일 내에서도 개신교 쪽으로는 상당히 크고 유명한 곳이고 재건한뒤 교회로 사용하기 시작한게 불과 5년 남짓하다보니 내부에 관광객들이 많다. 


프라우엔 교회(Frauenkirche)에서 극장 광장쪽으로 이동하다 보면 건물 외벽에 100 여 미터에 이르는 벽화를 볼수 있다. 


바로 작센왕의 행렬을 묘사한 군주의 행렬이라는 벽화다.  



마이센 자기 타일로 반든 이 벽화에 쓰인 타일의 갯수는 모두 25,000 개 정도이도 2차대전 폭격에도 기적적으로 이 벽화는 남겨졌다고 한다.


긴 길이때문에 왠간해서는 이 벽화를 한 카메라 앵글로 잡기는 힘들다.  긴 행렬중 왕으로 보이는 사람은 바로 가운데 사람??
평면적으로 보이는 이 그림은 발의 발굽이 겹쳐짐이 없이 상당히 세밀하게 원근감을 표현했다.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도대체 몇명의 사람이 등장하는지 세어 보다가 중간에 포기했다. --;;


군주의 행렬 뒷편의 프라우엔 교회의 멋진 자태..  


군주의 행렬 뒤로 하고 다시 프라우엔 교회가 있는 노이 마르크트 광장(Neue Markt Platz)으로 나왔다.


교회를 복원하면서 그 앞에 마틴 루터의 동상도 새로 만들었다.  


광장 한쪽에는 드레스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센왕국의  아우구스트 왕의 동상도 서있다.
이 사람은 드레스덴에서는 어디나 빠지지 않는듯..


폐허가 된 프라우엔 교회를 이전 모습으로 복구하는데 사용된 돈은 우리돈으로 약 2,500억원 정도라고 한다.


아직도 드레스덴은 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듯 하다.  아직도 이런 폐허가 방치 중인 곳도 있다.

드레스덴의 폭격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2차대전말 미국과 영국군에 의해 보복성으로 무차별적으로 시행되었고, 정확한 집계가 어렵지만 최소 30,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다고 한다.(최대 사망자는 135,000여명 까지 보고 있다.)
폐허가 된 도시를 본격적으로 재건하기 시작한 것은 통일 독일시절인 1990년대 부터이며 아직도 도시 재건은 진행중이다.


오랫동안 드레스덴의 중심지 역할을 한 마르크트 광장(Altmarktplatz)이다. 


요즘에는 서울에도 설치되어 있는 자동 화장실..  유럽에서는 장사가 좀 될듯 하다.   ^^;;


마르크트 광장(Altmarktplatz).. 시청사와 십자가 교회, 그리고 유명 쇼핑센터가 위치해 있는 곳이다.


광장 한쪽에는 크로이츠 교회(Kreuzkirche)와 시청의 탑이 보인다.  좌측편에 있는 탑이 시청의 탑인데 탑 꼭대기에 금박을 입힌 높이 4.9m의 '황금 사나이' 입상이 서 있는게 특징이다.  드레스덴 대부분의 건물이 그렇듯이 2차대전에 폭격으로 파괴된것을 복원한 것이다.  오른쪽 편의 검은색 건물이 크로이츠 교회인데 이곳에는 역사가 700년에 이르는 소년 성가대가 유명하다. 


마르크스 광장 앞에는 여행센터가 있고 무료로 관광 지도를 받을수 있다.  될수있으면 빠지지말고 들려봐야 할곳이다.


보면 볼수록 트랜스포머 범블비가 연상되는 트램이다.


이제 주차장으로 돌아가 베를린으로 출발해야 할시간이다.  츠빙거 궁전 옆의 공원 한가운데 있는 호수가에 특이한 장면이 있었다. 


연못 위에 한 아저씨가 저 자세로 누워 계셨던 것..  그런데 도대체  뭘 하고 계신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무슨 작업을 하는거 같기도 하고 쉬시는거 같기도 하고.. 


(4)에서 계속


오늘의 이동루트

이비스 호텔(Muenchen Parkstadt Schwabing) ➜ 잘츠부르크 시내투어 ➜ 에탑호텔(잘츠부르크 외곽) 

 
구글 지도 링크(Shift+마우스클릭 해서 같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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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숙소 :
에탑 호텔(Etap Hotel Salzburg Flughafen)
차랑 이동 거리(금일 250 km, 누적 13,240 km)




돔 광장(Domplatz) 이다.  


광장 한쪽에는 대성당이 위치하고 있다. 
774년에 최초로 지어진 대성당은  여러번 파괴가 되고 재건 되는 역사를 겪었다.

현재의 모습을 지니게 된것은 1598년도인데 이마저도 화재와 폭격으로 복구공사 등으로 외관이 조금씩 변경되었다.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태어난 모짜르트도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돔 광장 한쪽 구석에는 체코 출신의 여류 화가이자 조각가인 Anna Chromy의 대표작품인 평화의 코트(The Coat of Piece) 가 있다.   이 작품은 이곳 짤츠부르크 뿐 아니라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체코 출신의 조각가 답게 프라하(Praha) 어딘가에도 이 작품이 있다고 한다.)




돔광장 중앙에 있는 마리아상.. 18세기 무렵에 만든 것이다.



대성당 내부와 유럽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도 구경하고 성당을 나서는데..  
출구 앞에는 나가는 사람들을 검문을 할것 같은 초소가 있고 그 앞에는 그냥 가지 말고 헌금하라는 내용의 문구가 적혀있다.    헌.금.하.세.요.  ..  라고 한국말도 적혀있다. 

대놓고 헌금을 강요하는 듯 해서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차리리 입장료를 받는 편이 나을듯 한데..
그래도 여행을 하다보면 엉뚱한 곳에서도 한글이 반가운건 사실이다 ^^


다들 이곳 저곳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정신이 없다.  
회랑 중앙에서는 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뮤지컬 캣츠에 나오는 Memory를 멋지게 연주 하고 있다.
우리도 낯익은 멜로디에 잠시 연주를 경청하였다.


돔 광장에서 대성당 반대편으로 나오면 또 다른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마지막 장면인 가족 공연 장면을 찰영한 축제 극장(Salzburger Festspielhaus)이 있다. (사진 좌측에서 중앙까지 길게 뻗은 건물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합창대회 도중 탈출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내부는 가이드 투어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입장은 하지 못했다. 


호엔짤츠부르크 요새(Festung Hohensalzburg)로 올라가려면 대성당과 인접한 카피텔 광장(Kapitel Platz)을 지나야 한다.
광장에는 대형 체스판이 놓여져 있는데..  아직 맞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누가 나서주기를 바라는지.. 뻘쭘하게 서성거리고 있다.  


호엔짤츠부르크 요새를 왕복하는 등반열차  페스퉁스반(FestungsBahn)이다.  카피텔 광장 부근에서 출발한다.


요새 입장권과 등반열차와 통합 티켓은 10.5 유로..   
우리는 요새에 입장하지도 등반열차를 이용하지도 않을 예정이다.
--> 스위스에서 재정 초과상태이므로.. -_-;;


내부에는 짤츠부르크에서 이용 가능한 각종 탈것들의 모형이 전시중이다.  


요새위로 가는 오르막길에서 본 대성당..   광장에서 봤을때는 잘 몰랐는데 ..위에서 보니  대성당의 돔이 상당히 멋지다.


이곳에서도 빠지지 않는 견공 사랑...


올라와서 보면 단연 돋보이는 대성당 돔..  


아직도 요새는 저 머리 위에..


요래로 들어가는 입구..    상당히 가파른 길이다.


무료로 올라갈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다...   유모차를 끌고 온 한국인 부부가 성 안에 입장할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그 가파른 고갯길을 유모차까지 끌고 겨우 왔는데..  안 들어가면 억울 하실 듯 하다.

사실 옆에서 애를 쓰며 유모차를 끌고 오는 남자분을 도와줄까 말까로 심하게 갈등을 하며 올라왔다.
(조금만 더 힘들어 하시는 표정을 지었다면 주저없이 도와주었을텐데..^^)


밑에서 표를 사지 않고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표를 구입할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유턴을 해서 내려가는 중..


내려오다 보니 한적한 길이 보여서 그쪽으로 잠시 산책을 했다...  요새 입장 대신 산책이라.. ^^;;


일반 가정집..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저런 집에 산다면 마음의 평화는 자연스럽게 따라 올듯 하다.


요새와 연결된 등반 열차.. ..   초 긴축 재정상태인 우리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 


요새에 입장한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높은곳에서 짤츠부르크 시내를 내려다 보며 감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봐도 충분히 멋지다....  ' 라고 말하지만 위에 있는 사람이 부러운건 사실..ㅠㅠ


왠 뒷뜰에 이쁜 식탁이 셋팅되어 있을까 보니..  아마도 호텔 뒷뜰인듯 하다.,


식탁옆에 개 장식물이 귀엽다.,


요새 입구에는 설정 사진을 찍는 사진관이 인기다.   예를 들자면 합스부르크 귀족풍의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 같은


카피텔 광장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있다.  그 중 우리가 눈을 떼지 못했던 프리첼 가게..
가판대에는  먹음직한 것들이 널려있다.  그리고 다른 가게에 비해 상당히 성황중이다.


올라갈때는 텅 비었던 대형 체스판..  두 사람간의 뜨거운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데 붉은 옷의 남자가 꽤 고수 인듯 하다.


이곳에서 또 하나 사갈만한 기념품인 주석 맥주잔..


아까 우리가 그냥 지나쳤던 모짜르트 생가(Mozart Geburtshaus)다.   노란 건물이 바로 모짜르트 생가...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의 멋진 간판들에 넠을 잃고 보다가 그냥 지나쳤다.
  

앞에는 모짜르트 생가를 알리는 간판이 아담하게 만들어져 있다.  유심이 보지 않는다면 우리처럼 그냥 지나치기 쉬울듯..



다시금 눈앞에 들어오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의 멋진 간판들... 


이곳의 전통의상을 파는 상점..  보기와 달리 상당히 가격이 비싸다.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의 멋진 간판 퍼레이드


아까워서 먹기 힘든 초콜렛들.. .  도도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녹지만 않고 한국으로 가져갈수 있다면 듬뿍 사가져 가고픈 것들이다.



짤츠부르크를 구경하고 시간은 숙소를 찾아 가야 할때다... 서머타임에다가 연중 해가 가장 길 무렵이라 꽤 늦은 시간인데도 환하다.  그래도 숙소를 잡아 높고 나와서 마음은 편한 상황.. 

다시 짤츠부르크 시내를 지나는 잘차흐 강을 건너서 주차장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강 가에는 유람선을 타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특히 밤에 이 유람선을 타면 상당히 멋지다고 하던데 말이다....


구 시가지를 벗어나면 또 다시 한가한 거리가 나타난다.


호엔잘츠부르크 요새를 뒤로..  하고  숙소로 고고씽이다. 

주차장에 오니 주차요금이 7.5유로 정도 나왔다.  그런데 무인 주차 정산기가 동전밖에 결제가 되지 않는다.
7.5유로면 거의 13,000 정도의 거금인데 이런 돈을 동전으로 가지고 다닐 일이 거의 없는데 말이다.
--> 사실은 도도가 동전은 한국 갈때 환전이 안된다고 열심히 써덴 덕분이다. -_-;;

지페도 신용카드도 안먹는 대략 난감의 상황에 놓였다..   오늘은 이곳의 가장 큰 명절인 성령강림절이라 상점은 죄다 문을 닫았던데....   문득 오다가 보니 아이스크림 가게가 하나 열려있었던 것 같은데..

결국 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도도가 5유로짜리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어 왔다. 

나같으면 0.8유로짜리 가장 저렴한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살텐데 말이다.  역시 아줌마..-_-

 


잘츠부르크 외곽에 얻은 숙소에서 본 주변 풍경.. 
공항 근처에 위치한 이곳은 마트도 많고 각종 창고형 마켓이 밀집된 상업 지역이다.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 구경할 곳도 많았을 터이지만 오늘은 오스트리아의 국경일이다보니 너무나 한산하다.

날을 잘못 잡았지.. 뭐
도도는 어제 뮌헨(Munchen)에 이어 쇼핑을 못하는 불운에 안타까워 할 뿐이다. ^^

‡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 - 까딸루냐 광장 - 대성당 - 왕의 광장 - 바로셀로나 시청 - 람블라 거리 - 레이알 광장 - 보께리아 시장 - 까사 바뜨요
- 까사 밀라 - 구엘공원 - 사그라다 파밀라아 성당

- 금일 숙소 : 까사블랑카 민박 in Barcelona
- 차랑 이동거리(금일 0 km, 누적 7,520 km) 
- 이동경로(유로 자전거 나라 바로셀로나 시내투어, 도보+버스)






오늘은 유로 자전거 나라 여행사에서 바로셀로나 시내 투어를 신청하였다.
집결지는 까딸루냐 광장이다.

기아 자동차 마크가 잘보이는 이곳은 람블라 거리의 시점 까딸루냐 광장(Plaza do Cataluña)
기아 모터스 간판 아래가 우리의 집결 장소


까달루냐 광장은 바로셀로나의 메인 광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광장에는 아침 일찍(?) 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까탈루냐 광장에서 꼭 가봐야 할곳은 바로 엘 꼬르떼 잉글레스(El Corte Ingles)  백화점. 스페인 최고의 백화점으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도 봤다.


시간이 좀 남아서 광장을 둘러보고 우리는 집결장소에 나가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 기다리다가... 
집결 시간이 조금 넘으니 일행들이 모두 도착..  역시나 어디를 가도 코리안 타임은 항상 존재한다.
먼저 람블라 거리에서 가까운 고딕지구로..  

어제 왠만한덴 다 해집구 다녔는데 -_-



어제 왔었던 대성당.. 오늘도 또 왔다.


우리나라는 공사장 한쪽 옆에 조그맣게 그려있을 조감도가 실 사이즈로 벽위 차단막에 그려진다. 
스페인어로 되어있어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텔레포니카라는 회사가 이 성당의 보수공사를 지원한다고 되어 있는 듯..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유럽 전역에 있는 이동 통신회사다. 
우리나라로 치면 LG텔레콤, KT, SK텔레콤 같은거겠지..


대성당 뒷편으로 가면 유명한 왕의 광장(Plaça del Rei)이 나온다.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돌아왔을때 당시 이사벨 여왕이 저 계단위에서 콜롬부스를 맞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저 계댠위에 서서 여왕의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여왕의 부부가 묵었다는 방..  콜롬부스가 여왕 부부를 처음 알현한 장소는 그라나다 왕국을 내몰기 위한
전초 기지였던 꼬르도바(Cordoba)..  였고..  콜롬부스가 돌아왔을때에는 이미 스페인에서 이슬람 새력을
내몬 뒤였다.



중세의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딕거리..  숙소 주인아저씨의 말씀으로는 이처럼 보존이 잘된
거리는 유럽에도 몇 안된다고 하신다.

우리는 그런 곳만 골라가서 그런지 이런 풍경은 자주 본듯 한데.. ^^


왕의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로셀로나의 명물 추러스와 핫초콜렛이 유명하다고 하는 곳..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지에서 쉽게 볼수 있는 추러스가 이 동네 음식이었군.. 


배고플때가 되서 그런지 빵 가게에서 빵들이 나를 부르는 듯 ^^


시청앞에 왔다. 스페인 국기 옆에는 까딸루냐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시청이 있는 광장 그늘에서 잠시 스페인 왕실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가이드 아가씨..


스페인 어로 Hotel은 시청을 뜻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호텔도 Hotel이라고 표시해서 혼동하게 해서 문제지만..


유명한 초콜렛 가게라고 한다. 


레이알 광장(Placa Reial)에 왔다.  어제 플라맹고를 싸게 봤던 바로 그..  (어제의 아픔이 또다시 생각 난다. )
사진속의 가로등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이란다.  원래 공모 당시에는 바로셀로나 전역에 적용하려 했는데..
실제로는 이곳 광장 2개에만 설치 했다고 한다. 



람블라 거리(La Lambla) 예전에는 이곳이 하천이었나보다.. 복개공사를 해서 이처럼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 되었다.
'람블라' 라는 말은 아랍어로 '하천이 흐른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문화의 거리 답게 바닥 타일도 특색있게 조성해 놓았다.


람블라 거리 중간에 있는 보께리아 시장(Boqueria) 시장, 바로셀로나의 유일한 제래시장이다.
사실 유럽을 돌아보다 보면 제래시장을 거의 볼수 가 없다.   있어도 정말 작다..  우리 동네의 시장 보다도 훨씬 작은..


스페인 사람들이 죽고 못산다는 하몽..  고기를 소금과 향신료를 이용해서 절여 만든 햄이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것도 당시에 금보다도 비쌌던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발견하러 간것..


시장에는 특이하게도 초콜렛 가게가 있다.  우리는 초콜렛은 제과점 한켠이나 마트에서만 살수 있는데..
유럽에서는 초콜렛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이  꽤 있다.


이쁘게 생긴 초콜렛이 꽤 많다... 도도는 초콜렛을 좋아하기에 더더욱 관심이 가는 듯 하다.
사실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되면 초콜렛처럼 비상 식량이나 에너지 충전을 위해 좋은 것은 없다.  덕문에 여행 내내 초콜렛은
실컷 먹었다.


여러 모양의 초콜렛과 사탕을 팔고 있다.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2유로 짜리 즉석 조각 과일..  1유로 짜리 과일주스도 많이들 들고 다닌다.


1 kg 단위로 팔고 있다. 


과일을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봐야 한다.  만지면 주인이 뭐라고 한다.  과일을 만지면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가이드 투어는 바쁘게 움직여야 하기에 일단은 눈으로만 돌아보고.. 나중에 다시 올거라고 다짐하는 도도,, 
뭐 재래시장을 천천히 돌아봐야 한다나?


람블라 거리의 보도블록은 물결모양으로..  이곳이 예전에는 물이 흐르던 곳이라는 걸 형상화 한것인가?


다시 까딸루냐 광장으로 되돌아 왔다.   사진은 엘 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

까딸루냐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그라시아 거리쪽으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린곳은 가우디가 설계한 '까사 바요뜨'가 있는 곳

이곳에서 일행과 잠시 헤어졌다..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식사를 하러 가고 도도와 나는 그라시아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라시아 거리는 바로셀로나의 명품 거리로 유명한 곳.. 

가이드 투어는 단독 행에 제약이 있기에..
점심시간 동안 도도와 같이 TOUS 매장을 찾아 갔다가 집결장소로 가기로 했다.
첫날에 비행기를 허둥지둥 탄 덕분에 목걸이를 찾지 못하고 왔었기에..(D-1 참조)
혹시나 같은 모양의 목걸이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엘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과 그라히아 거리에 토스 매장을 찾았는데..
유로화가 비싸서 그런지 우리가 한국에서 구입한 가격의 1.5배..
또 다시 도도의 타박이 시작된다.

'괜히 찾아갔어, 괜히 가격 물어봤어 ㅠㅠ' 

까사 바뜨요(Casa Batlló)는 말그대로 바뜨요라는 사람의 집이다. 
당시의 무명 건축가였던 가우디에게 공사를 맡겨서 만든 집이다.
이 집에 반한 밀라라는 사람 역시 가우디에게 자기 집을 건축 의뢰하게 되었다.


현재 이집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으며 입장료가 16유로나 된다. 
너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비싸다.   당연히 우리는 들어가지는 않았다.


밑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라이사 거리를 건너서 사진을 찍었다.
대충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건물..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가우디는 건물 외관에 이처럼 십자가를 빼먹지 않았다.
현재 성인으로 추대 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외장을 타일을 깨서 만든 었고, 발코니 모양은 마치 해골을 연상키도 한다.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에게는 별 어필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구엘이나 밀라 같이 특이한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가우디의 진가를 알아봤을뿐...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였다. 
까페를 연상시키는 내부 인테리어..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스페인에서는 맥도날드가 딱이다.


까시 밀라(Casa Mila)에 왔다.  물결모양의 외관과 특색있는 굴뚝이 특색있는..


특색있는 굴뚝.. 중세시대의 기사들의 투구 모양을 형상화 한것들이라 한다.
가난한 여행자들은 이처럼 사진의 줌을 이용할수 밖에 없다 ㅠㅠ


옥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데.. 입장료가 역시 비싼편.. 
그래서 그런지 올라간 사람들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듯..^^ 


까사밀라의 발코니는 해초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옥상에 자세히 보면  역시나 이건물에도 십자가 형태를 만들었다.
당시에 스페인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고 특히나 카톨릭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이 많아서 국민들의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라는 가우디에게 제발 십자가 모양을 빼달라고 했는데.. 가우디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밀라는 사업도 어려웠지만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가우디가 괘씸해서 돈을 지급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결모양의 외벽..돌로 만들어져서 현지에서는 La Pedlera(채석장)이라 불린다.


미지급된 돈을 받기 위해 가우디가 소송까지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라의 사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결국은 이 건물은 은행의 소유가 되었다.


그라시아 거리에는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 외에도 특색있는 건물이 많았다.
까사 밀라 길건너편에 있는 빌딩..


까사 바뜨요 근처에 있는 건물인데 왜 철조망 같은걸 감아두었는지는 모르겠다.
막눈인 내가 보니 그다지 멋있는 것도 모르겠는데..


까사 바뜨요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기에..  도도와 나는 그리로 이동..

까사 바뜨요 근처에 있던 제과점..   


키로그람당 32유로인 젤리..  동네가 동네인 만큼 비싸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성인용품점이 눈에 잘보이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까사 바뜨요 뒷쪽으로 돌아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뒷 마당을 구경할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도 참 많이들 들어왔구나..  


까사 바뜨요에 앞에 왔다.  가이드 아가씨가 혼자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에 선택 입장해서 구경중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왜 벌써 왔냐고 물어보기에 들어가지 않고 외관만 보고 왔다고 얘기했다.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어제 소매치기 당한 얘기, 여태까지 지나왔던 우리의 여행지 얘기 등을 했다.

소매치기는 이곳에서는 큰 죄가 아니라고 한다.
'경제도 어렵고 한데..  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라는 생각이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한다.
그래도 마드리드에서는 거리마다 수많은 경찰들이 눈에 띠었는데..
이곳 바로셀로나에서는 사람 많은 람블라 거리에 조차 경관을  보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다 집합하자 이제 구엘공원로 이동~~ 
빠른 이동을 위해 버스로


구엘 공원에 들어오니 돌로 쌓아서 만든 다리ㅏ가 눈에 들어온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를 후원했던 구엘이란 사람이 가우디와 손잡고 만든 대규모 주택단지..
넓은 대지위에 분양된 집은 달랑 3집 밖에 없어서 나중에 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분양 받은 두사람은 가우디와 구엘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가우디의 친구였다고 하니..
실제로는 분양율 제로의 완전 망한 주택 단지인것이다. 


돌로 만든 다리가 위태로워 보여서 건설 직후에는 아무도 다리 밑으로 지나다니지 않았었다고 한다.
오로지 가우디만이 이 길로 산책을 했다고 한다.



이 집은 가우디가 분양 받은 집이다.  현재는 가우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고 상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건축할 시에는 그 도가 지나쳐
성당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공원 중앙에는 이처럼 넓은 광장이 있다. 뒷편 붉은 건물은 구엘 저택이다.
구엘의 딸은 이 공원을 미국의 부호에게 팔려고 했는데 그 미국사람은 이 공원 자체를 해체해서
고스란히 미국에 옮겨놀려고 시도를 했다.
당연히 스페인에서는 자기네 문화유산을 미국으로 옮겨 가는 것에 대해 많은 매체에서 떠들기 시작했고 곧
여론이 안좋아 졌다. 
그 딸은 고심끝에 돈보다는 명예를 택하려 모든 판매 계획을 백지화 하고 이 공원을 시에 기증후 무료로 개방하였다.
저택 역시 학교로 사용할수 있도록 기증했다.
덕분에 지금 저 건물은 초등학교로 사용중이다. 
이 공원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기에 저 학교의 학생들은 세계 유일의 문화유산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다.  
스페인의 교과서에 이 사실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실리기도 했다.



광장 가에는 사람들이 편히 쉴수 있도록 벤치를 만들어 두었는데 .. 그 길이가 길기때문에 기네스북에
등재 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나무 수종 하나하나, 돌로 쌓은 벽돌 하나하나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우리도 가우디가 만든,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 벤치에 앉아보았다.  허리 부분은 둥굴게 튀어나와 있어
앉아 있으면 허리가 펴지며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광장 지하에는 대형 수조가 있어서 빗물을 받아 여과하여 상수도로 공급하였다고 한다.


마치 그림 형제가 지은 동화속의 과자의 집처럼 생긴 관리동.. 


광장 지하로 물이 흘러 들어갈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건물 역시 관리동인듯..  정문을 지키고 있는 건물들이다.


관리동 뒷편 멀리 지중해가 보인다. 



가우디는 이처럼 타일을 깨서 만드는 방법으로 이 단지를 조성했다.  그래서 인부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우리 민박집 앞에 있는 바로셀로나의 랜드마크중 하나인 포트 올림픽 쌍둥이 빌딩.
구엘공원에서 한눈에 보인다.


한쪽에는 장사치들이 이쁜 머리삔을 팔고 있다. 


공원의 맨 위에는 구엘과 가우디 외에 한사람 더 분양 받은 그 사람의 후손이 아직도 살고 있다고 한다.


돌담.. 그리고 종유석 처럼 튀어나온 천정..  대단한 생각이 든다.


가우디는 건축의 모든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찾았다.  파도를 형상화 한 교각.. 대단하다는 생각에 앞서서..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뭐 하긴.. 가우디를 가르쳤던 스승은 가우디에게 그는  천재 아니면 바보  둘중에 하나일거라고 얘기했다고 하니..


기둥 역시 평범하지 않게 하나의 예술품을 연상시킨다.  야자수 모양의 기둥과 머리에 물을 지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가??


저 끝쪽에는 토네이도를 형상화 한 기둥도 있다. 



아까 우리가 벤치에 앉아있었던 광장 아래는 이 처럼 생겼다...  기둥의 경계 높이가 일정해 보이지만 원근법을 적용해서 그 착시현상으로 일정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는 뒤로 갈수록 높아진다.



천정에는 역시나 타일을 깨서 만들었는데 따일 뿐아니라 병을 깨서 붙여 놓기도 하고 접시를 깨서 붙이기도 했다.


깨진 접시가 붙어있는 천정..


깨진 병도 붙여 놓았다... 당시에는 이런 타일을 모두 북아프리카에서 수입했고 매우 비쌌는데.. 
주로 깨진것을 얻어와서 붙였기때문에 건설비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멀정한 타일을 사서도 일부러 깨서 붙이는 바람에 인부들의 원성을 샀다고..
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일을 만들어 시키는 상사들이 있지 않은가 ^^



정문쪽으로 아래로 내려오면 이처럼 도마뱀 형상의 조형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념 찰영을 하려고 붐빈다.


하여튼 사람들이 줄서 있으니..  눈치껏 빠른 행동 필수..


까딸루냐 깃발과 개..  수도 꼭지 모양 하나도 신경쓴 모습이다. 


멍쩡한 타일을 이처럼 깨서 붙였다고 한다.


관리동 위에 버섯모양의 탑...


정문에서 보는 구엘공원..  정면 기둥위가 아까 우리가 벤치에 않아 있던 광장이다.



여러번의 눈치와 재빠른 행동 끝에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한  도도..
우리 일행을 벌써 저만치 갔는데.. 


일행들이 간쪽으로 와보니 우리를 두고 사라졌다.  한참이나 헤매고 찾다보니 겨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


구엘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곳은 바로 산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앞..


산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 역시나 어제 우리가 왔던곳, 이 병원을 설계한 건축가는
가우디의 스승인 도메네크 이몬따네르.. 평상시 엉뚱한 면이 많고 독선적이었던 가우디에게는
적들이 많아 스승과도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고...


병원에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쪽으로 걸어간다.


가우디 사후에도 건설을 진행되고 있는데 ..  사진에서 보이는 쪽이 가우디가 생전에 만든 부분이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내용이 있는 면이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가족의 조각..  이 조각에 있는 인물들은 가우디 주변의 인물들을 뽑아서 석고본을 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표정이나 몸이 굉장이 섬세할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는 간난 아이조차도 실제 병원에서 죽은 아기를 가져와 사용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정말로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장의 차이라는 얘기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예수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 내용인데 특이한것..
오른편에 왕이 태어났다는 예언을 듯고 예루살램에 있는 갓난 아이들을 죽이러 다니는 병사가 보이는 가??
이 병사는 특별히 공모를 해서 사람을 뽑아서 그 형상을 석고로 본 떠서 만들었는데 그 사람의 치명적인 단점은
발가락이 6개였다고 한다. 
가우디는 조각할때 그것을 고쳐서 할 생각으로 그 사람을 뽑았는데.. 개념없는 석공이 발가락을 6개로 그냥
두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예수의 탄생 면에 천상으로 올라간 예수가 마리아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것을 조각해 두어서 
생뚱맞다고 생각했는데.. 개신교와 카톨릭이 틀린부분이 바로 이 내용이라고 한다.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는 신격화 되어 있지 않은 반면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도 신격화 되있어서 나중에 하늘에서
성령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가우디는 일부러 예수의 탄생 면에 이를 형상화 함으로써 카톨릭의 독실한 신자임을 강조한듯 하다.   
아래 부분에 튀어나온 것들은 모두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것으로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 


성당 옆에 있는 이 아파트는 언젠가 성당이 완성되면 없어질 건물.. 
이 아파트 자리까지 성당이 건설된다고..  하지만 이 성당이 언제 완성 될지 모르니 ...

하절기에는 바로셀로나 시내 투어가 몬주익 언덕까지 가는 것으로  


‡ 오늘의 이동루트

리스보아 캠핑(Lisboa Camping) - 주차장] - 꼬메르시우 광장(Pr. do Comercio) - 대성당(Se) - 상조르제 성(Castelo de Sao Jorge) - 로시우 광장(Praca do Rossio) - 리베르다드 거리(Av do Liberdade) - 뽕발 후작광장(Praca Marques de Pombal) -  에두아르드 7세공원(Parque Eduardo 7) - 엘레바도르 싼타 후스타(Elevador Santa Justa) -  주차장 - 점보마트 - 리스보아 캠핑

- 금일 숙소 : 리스보아 캠핑 in Lisbon

- 자동차 이동경로(금일 30km 누적 5,510km)






오늘은 리스본의 구 시가지를 돌아보려고 한다.

모처럼 날씨가 정말 좋다...  포르투갈에서는 이런 날씨가 처음인듯 하다.



구시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일단 A5 고속도로를 타고 나가야 한다.


어제 끄리스또 레이에서 캠핑장으로 오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간다. 오늘은 일요일을 맞이하여 시내에는 무슨 행사를 하는듯 하다.  시내 한복판에 곳곳의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무슨일인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처럼 마라톤 같은걸 하나보다.


시청사 근처의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늘이 일요일인지라 대부분 노상 주차가 무료이기도 하지만 여기 주차장도 특별히 돈을 받는 곳이없다.
그런데 어제와 마찬가지로 동네 부랑아 처럼보이는 사람이 와서 돈을 요구한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하기에 대충 무슨 얘기인지 추측해야 하나 몸동작을 보니
자기가 여기 계속 있으니 차를 잘 돌보아 주겠다는 얘기인듯 하다.
그냥 1유로 줘서 보냈다... 우리차에 해꼬지라도 하면 안되니..



시청사 앞의 광장이다.   정면의 건물이 시청사..  멋진 광장이다.



시청사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꼬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이 나온다.
리스본에서 가장 크면서 아름다운 광장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개선문 위에 조각되어 있는 인물은 뽕발 후작과 바스코 다가마.. 
'바스코 다가마는 어디나 빠지지 않는군..'


이 광장은 원래 마누엘 1세의 궁전이 있던 자리였으나 1755년 대지진으로 소멸되었고 이처럼 광장으로 조성되었다.


광장을 가로지르는 트램.. 열차



정말 멋진 광장이다.  바로 뒷면은 떼주강과 접해 있다.



하지만 무슨 공사인지 몰라도 이처럼 광장 절반 이상은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돈 조세 1세(Don Jose)의 동상만이 덩그라니 보이고 있다.   이 벽면을 넘어서면 바로 떼주강이 보인다.
떼주강은 타호강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일요일을 맞이하여 풍물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풍물시장에는 각자 수작업으로 만든 악세사리나 생활용품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이하게 생긴 여러 목걸이와 팔찌..



우리에게는 낯선 아이들 장남감들도 신기하였다.  대부분 손으로 직접 만든것들이다.



개선문을 지나면 바이샤 지구의 중심부 어구스타로(R. Augusta)가 나오는데 양옆의 상점들은 일요일을 맞이하여
거의 문을 닫아 한산한 모습이다.  



일단은 상 조르제 성(Castelo Sao.Jorge)부터 가보려고 길을 나섰다.



오토바이처럼 생긴 삼륜차?  이것도 어디선가 대여해주는거 같다.  상 조르세 성까지 올라가는 길에 유난히 눈에 많이 띠었다. 



트램 정류장..  리스본의 트램인 노란색 까리스(Carris)는 이곳의 마스코트 !!! 
리스본에 온다면 꼭 한번 타봐야 할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걸어다니느라 못탔다는 ㅠㅠ



상 조르제 성을 가는길에 볼수 있는 대성당(Se)이다. 1147년 알폰소왕이 이슬람 세력으로 부터 리스본을 되찾은것을 기념해서 만든 성당으로 원래는 이슬람 예배당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건축 양식은 로마네스크양식 처럼 보인다.
벽체가 두꺼운 덕에 1755년 대지진에도 견딜만큼 튼튼하다.


일요일을 맞이하여 성당 내부는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대성당 앞에있는 안내판..  미사 시간 등에 대한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대성당의 외벽은 800여년의 세월을 느끼게 해준다.



상 조르제 성을 올라가다 보면 이처럼 떼주강이 훤히 볼수 있는 전망을 만날수 있다.

 

강에 무슨 저렇게 큰 페리까지 들어올수 있다니..  리스본 상류쪽의 떼주강의 하폭은 10km에 달한다고 하니..
강이 아니라 바다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구석구석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골목을 오르게 된다.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유는 이 지역이 대지진의 피해가 없었던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내 상 조르제 성에 올랐다. 


이곳에서는 이처럼 끝내주는 전망을 볼수 있다.  멀리 떼주강을 가로지르는 4월 25일 다리가 보인다.



영국의 리즈성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공작새들이 그냥 돌아 다니고 있었다.
별로 사람을 무서워 하지도 않고..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했더니 거리의 악사가 클래식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 생뚱맞게 '아람브라궁의 추억'을 연주하고 있다.
아람브라궁이라면 스페인의 그라나다에 있는 유명한 궁전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일본처럼 서로
견원지간이나 다름없는데..  스페인 궁전에 대한 음악을 연주하다니~~



상 조르제성에서 본  상 비센트 데포라 성당(Igreja de Sao Vicente de Fora)과 빵데옹(산따 엥그라시아 성당, Santa Engracia)..
하얀색 둥근 돔의 형태의 빵데옹은 엥리께 왕자와 바스코 다가마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것..
하여튼 이 두 인물은 포르투갈에서 어딜가나 관련 기념물이 있다니까...
두개의 탑으로 만들어진 상 비센트 데포라 성당은 빵데옹보다 조금 일찍 만들어졌고..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리스본을
이슬람교로부터 탈환한것을 기념하여 만들었다.  오늘날의 모습은 나중에 다시 건설된 것이라고 한다.
걸어서 가기에는 멀어서 저기까지 가는 것은 포기다 ^^



상 조르제 성은 로마인들이 요새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다. 하지만 이 외벽들은 5세기경
서고트 인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꼬메르시우 광장(Praca do Comercio)에 궁전을 만들기 전까지는 이곳을 궁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성벽에 앉아 열심히 여행서를 정독하고 있는 도도~~



우리들을 신기해 하는 아이가 귀엽다 ^^



전망이 좋은 곳에는 이처럼 카페와 레스토랑을 만들어 놓았다.



상 조르제 성위의 광장의 확트인 전망은 서울의 남산 타워 광장을 연상시킨다.



포르투갈에 대한 역사 지식이 부족해 누구의 동상, 석상인지는 모르겠다.



언덕위의 원형돔은 빵떼옹..


깨진 돌로 만든 도로에 나란히 놓여있는 트램 퀘도..  어제 이 위로 차를 몰고 가면서 흘렸던 식은땀이 아직도 기억난다.
 


저게 바로 리스본의 마스코트인 노란색 트램 까리스(Carris)



다시 바이샤 지구로 내려왔다.   정면에 보이는 것이 꼬메르시우 광장에 있었던 개선문..



바이샤 지구를 지나 리베르다드 거리를 가다보면 나오는 로시우 광장이다.
높이 솟아있는 동상과 프랑스풍의 분수.. 그리고 물결무늬의 바닥이 인상적인 광장이다.


이 동상은 브라질 초대 총독이었던 돔 페드로 4세의 동상이다.


저 산위에 있는 성이 바로 아까 우리가 갔다왔던 상 조르제 성이다.



꽤 멀리 보이는 거리를 우리는 순전히 걸어서 다녀왔다.



리베르 다드 거리다.   중앙에 나무로 이루어진 보도 양옆은 차도가 있다.
마치 최근 건설해 놓은 세종로의 광장을 연상시키는 거리이다.  세종로와 다른점은 이처럼 나무가 무성하다는 것!!


중앙에는 이처럼 연못과 실개천을 조성해 두었다.


나름 신경을 써서 조성해놓은 정원과 화려한 무늬의 보도 블록(돌로 깨서 만든)..  시원한 나무그늘..
산책 코스로 알맞은 곳이다.
도로 양옆에는 호텔과 은행, 명품 상점 등이 포진하고 있다.



리베르다드 거리에 있는 석상..  무슨 석상인지는 알길이 없다.



드디어 리베르다드 거리의 끝인 뽕발 후작 광장에 다다랐다.  서울에 있는 장충단 공원 같은 느낌이 드는 광장이다.
뒷편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곳이 바로 에두아르드 7세 공원(Parque Eduardo 7)이다.
사진의 동상은 뽕발 후작의 동상이겠지??



뽕발 후작의 동상 뒷편.. 뽕발 후작은 18세기 대지진이 일어난 뒤 현재의 리스본의 모습을 계획한 인물이다.
18~19세기 건설되었던 건물들은 현재 법으로 외관을 바꾸는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공원 앞에 있던 광고판 ..  혹시 정치 광고??



에두아르드 7세 공원은 경사도가  있다.  언덕까지만 올라가 보자고 도도를 독려하며 올라갔다.
오늘 우리가 꽤 먼 거리를 걸어다녔기에 다리도 아프고 지치기도 했다.


이곳에 무슨 행사를 하는지는 몰라도 인부들이 일요일에도 가시설 가건물을 건설하고 있었다.
 


언덕위에 오르면 이처럼 인공 연못이 있고..


스페인의 대표 백화점인 엘 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이 포르투갈에도 있다.



하지만 이 백화점은 일요일에 문을 닫아 도도를 실망 시켰다.



에두아로드 7세 공원은 올라오는데는 힘들지만 언덕에 올라오니 떼주강이 한눈에 들어올정도로 끝내주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신경써서 조성해둔 잔디밭과 정원도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상 조르제 성도 보인다. ^^



왠 닭들이 공원을 돌아다니는지.. 



다시 바이샤 지구쪽으로 이동한다.


리베르다드 거리를 따라 다시 바이샤 지구로 가고 있다.  아까 올때는 중앙의 나무숲길로 왔지만 되돌아갈때는 명품 상점을
구경하면서 이동하기로 했다.
리베르다드 거리의 명품 가게들 중 하나..  저 접시 하나에 눈이 돌아갈 만큼 비싼 금액이 적혀있다.



항상 비싼 명품만 파는 상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스포츠 전문 매장도 있기도 하고..



레스따우다도레스(Praca dos Restauradores) 광장 이다.  부흥자의 광장이란 뜻으로 1640년 스페인으로 부터 독립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가 광장 중앙에 있다.
뽕발 후작 광장과 레스따우다도레스 광장은 리베르 다드 거리의 양 끝이다. 
고로 우리는 리베르다드 거리를 왕복했다는 사실..



빨간색의 가판대는 우표 자판기와 우체통..



왠 건물위로 사람들이 지나가는 통로가 있나 싶었는데


밑에 가보니 바로 바이샤 지구의 유명한 랜드마크인 엘레바도르 싼타 후스타(Elevador Santa Justa)라는 엘리베이터 승강장이다.  바이샤지구와 바이루 알뚜 지구를 연결하는 승강장..  높은데 걸어서 올라가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다.
역시나 유료로 이용 가능하며 대중교통 1일권 소지자는 무료로 이용할수 있다.

우리는 이 유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그냥 걸어서 그냥 바이루 알뚜 지구로 올라갔다.


바이루 알뚜 지구에 있던 성당..  지도를 보니 까르무 성당 정도 되는듯 하다.


바이루 알뚜 지구(Bairrro Alto)는 여러 상점들과 모여있는 사람들 외에는 특별히 볼만한게 없다.
특히나 오늘은 왠만한 상점이 문을 닫는 일요일이니..
바이루 알뚜 지구에서는 저녁에 파두(Pado) 공연을 볼수 있고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다.  이것도 저녁과 밤에 해당되는 것이니..


바이루 알뚜 지구를 뒤로 한채 다시 시청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붉은색 클래식 스포츠카가 눈에 띤다.
유럽에서는 이처럼 에어컨도 없고 편의시설도 없는 클래식카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수 있다.



우리가 차를 세워둔 주차장..  한 남자가 주차장 안에 차를 주차하려다가 아까 우리가 1유로를 건냈던 부랑자와 말다툼을 하더니 그냥 주차장 밖에 도로에 차를 세워 둔다. 
아무래도 이곳이 무료 주차장인데 너가 뭔데 돈을 받냐고 실갱이를 한듯 하다.
우리일은 아니지만 그 부랑자가 차에 해꼬지를 하면 어떻할까.. 걱정된다.



오늘은 정말 많이 걸었다...  아마 유럽에 여행하면서 가장 많이 걷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일찌감치 우리 숙소로 가기로 했다.


걸어서 지나쳤던 로시우 광장에 왔다. .. 물론 차로 .. ^^



그리고 리베르다드 거리를 지나..  뽕발 후작 광장에서 좌회전을 해서 쭉 직진해 나간다.


이렇게 시가지를 지나서 계속 직진하면


고속도로가 나오고 중간에 출구로 나오면 바로 우리 캠핑장에 도착할수 있다.(구글 지도 참조)



캠핑장 내부 도로..  왠 말을 몰고 가는 사람도 있네..



리스보아 캠핑장은 저렴하고 시설도 좋고 .. 정말 추천할만하다.
크기도 굉장히 크다.





‡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한인 민박) - 똘레도 - 숙소(한인민박)
똘레도 시내는 도보로 둘러봐도 충분 할만큼 넓지 않고 도로도 좁다.

- 금일 숙소 : 피레네오스 민박 in Madrid

- 차량 이동경로(금일 230 km, 누적 4,530km)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날씨가 좋다.
다행이다.  스페인의 날씨가 좋다고 도도한테 큰소리 쳤었는데.. 하루라도 이렇게 화창해서..


숙소에서 고속도로까지 진입하기는 쉬었다... 거리도 가깝고.. 


하지만 새로 조성된 길이라 그런지 네비게이션에 없는 길..  그래서 몇번이나 잘못 빠져나가기도 했다.


M 50번 고속도로다.  비교적 최근에 다시 도로 선형 공사나 진출입 인터체인지 공사를 한듯 하다.


누적거리 4,333km ... 꽤 달렸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운전할일이 없기에 1년정도 운전해야 만들 거리다.


M45 도로로 바꿔 타고..  이 길로 곧장 가면 오랜지의 고장 발렌시아가 나온다. 
우리는 중간에 A-42 도로로 가야 한다.


드디어 똘레도 이정표가 보인다.


네비게이션에 길이 제대로 안나와있어 갈래길이 나올때 마다 긴장해야 했다.


이제 이 길을 따라 직진을 하면 똘레도에 갈수 있는 것이렸다..


네비 표시는 좌측으로 빠지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직진을 하는 것이다.
기온이 섭씨 11도로 높지는 않지만 햇볓이 뜨거워 추운줄 모른다. 


톨레도 이정표는 끊임 없이 나온다.



끊임 없이 나오는 평지한가운데를 지나는 길..  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해발 600미터 이상의 높은 지대이다.


드디어 톨레도에 다와가고..


톨레도에는 대형 여행 안내 센터가 있다...
마치 우리나라 아파트 모델하우스나..  조그만 전시회관을 연상시키는 건물..
만든지는 오래되지 않아 안에 들어가보니 일부 공사를 하고 있었다. 
차는 이 여행안내센터 옆에 큰 주차장에 차를 세워 두었다.



저 위에가 똘레도..   멀리서도 눈에 띠는 알까사르(Alcazar)


스페인의 열정을 닮은 짙은 붉은 색의 꽃이 카메라를 부른다 ^^



여행 안내센터 안.. 일요일이라 그런지 너무나 썰렁하다.


뭔가 대단한 건물인듯 한데..  자료를 찾아봐도 잘 안나와있다... 


흠.. 구 시가지까지는 제법 걷는 양이 된다.


드디어 구시가지 입구에 다다랐다.  저 높은곳까지 가봐야 하는건가 보다...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별로 없다... 우리가 조금 일찍 와서 그런듯 ..  일요일이라 그런지 상점도 문을 닫은데도 많고



우리가 지나처 온 문... 저 옆에 관광안내소가 있고 영어로 된 지도를 비치하고 있으니 하나 얻어온느게 좋다.



그래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관광지다 보니 일요일에도 문을 연 상점들도 있다.


처음 들어가는 초입길부터.. 옛 향기가 물씬 풍긴다....


도로 옆에 주차된 차도 없으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느낌이 든다.



똘레도는 구석구석 돌아보며 이런 골목길을 드다드는 재미가 있는 곳이다.

실제로 전쟁에서 썼을 듯한 칼들도 팔고 있다... 이런거 사가지고 가면 공항에서 안걸릴까 모르겠다.


똘레도의 특산품인 마자판(Mazapan)..   가격은 결코 싸지는 않다.



여행서에 보니 꼭 한번 먹어봐야 할것으로 나와있는데... 
세고비아에서 아기돼지 바베큐를 못먹은게 한이 되서 꼭 먹겠다는 다짐을 한다.



똘레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알카사르에 드디어 도착했다...
스페인의 태양과 하늘 답다.. 


"거봐~~ 스페인 날씨가 원래 이런데..   여태 날씨가 이상했던거라니까.."
도도한테 모처럼..  큰소리를 쳐본다.
스페인은 날씨가 좋고 비가 잘 안온다고 얘기해왔느데.. 며칠간 안좋은 날씨덕에
'스페인의 날씨가 왜 이모양이냐며' 도도의 추궁을 받고 있었던 차였다.  ^^


이곳은 정말 화려한 금속 세공품이 많다.   상점마다 여기는 뭘 팔까 기대를 하게 되는 곳이다.



유리 공예품도 많고..  이런것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도도는 역시나 이런 인형이 눈에 들어오는 듯..  가우디의 타일 아트를 모방해서 만든 색색의 동물 인형이
이채롭다.  (이곳 뿐아니라 스페인에서 많이 볼수 있는 것들이다.)



알까사르 근처에서는 도저히 카메라로 이 건물을 한 화면에 잡을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요새는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번의 개축으로 이슬람과 무데하르, 고딕 양식이 혼합된 형식을 보이고 있다.
현재는 군사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라고 한다.


알까사르 앞에 기념품 가게에 전시된 기사 모형들..


이곳에 오면 반드시 하나 사야 하는 필수 아이템이다.


나를 끝까지 고민하게 했던 기사 모형.. 우리나라돈으로  3만원정도..   눈 딱 감고 살려고 했다가...
마지막에 포기했다...  들고다닐걸 생각해서..


옛것을 보존하려고도 하지만 이곳저곳 공사도 많이 진행하고 있었다..
뜬굼없이 현대식 빌딩이 들어설일을 없겠지만... 



현재 이곳에서는 가구를 이루며 사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한다...  대부분 외곽으로 빠져나가고..
대부분 숙박시설이나 호텔, 상점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상점의 볼거리는 이곳 똘레도가 최고인듯하다. 


보고있으면 왠지 뭔가 하나 사야될듯해서...


시간이 지나자 차츰 사람들이 많아진다.


드디어 똘레도의 하일라이트..  똘레도 대성당(Catedral) 이다


똘레도 대성당앞에는 제법 큰 광장이 있다. 광장 끝에서 사진을 찍으면 겨우 성당이 한 화면에 잡힌다.
도도는 모처럼 겨울 옷을 벗어 던지고 뽀샤시 옷을 입고 기뻐하고 있다.  겨울 끝 ..  봄 시작이다.  ^^



고만 해라 많이 먹었다 아이가~



벽면에 있는 성인들의 석상들


1227년부터 266에 걸쳐 건설된 성당이다.  스페인 카톨릭의 총 본산으로..  스페인 3대성당 중 하나..
내가 보기에는 스페인 최고의 성당이라고 얘기해도 무난할듯 하다.


입장료는 7유로 정도로..  매표소가 다른 상가 건물에 있기때문에 잘 찾아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종교시설에 돈을 받는 것이 못마땅하기는 하다.

내부의 화려한 장식은 감탄스럽기만 하다.  사진은 파이프 오르관..  그 아래는 세밀한 조각 석상들이 있다.



성당 내부의 모습..   원래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데  뭣모르고 열심히 찍었다.
나중에 나올때 보니 사진을 찍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는...


성당 내부 모습..



성모마리아 상... 카톨릭 신자들은 이 앞에 초를 사서 켜놓기도 한다.  초 하나의 가격은 대략 1유로 선



천정 꼭대기에 있는 대리석 조각들을 보며 감탄할수 밖에는..



천정이 얼마나 높을지 모르지만  이 대리석 조각을 만드는데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을지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



신앙에 대한 깊이가 느껴지는 조각들이다.



천정에도 역시나 금속 장식품이 고정되어 있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예수 십자가..    



바르셀로나의 가우디가 설계한 파밀리아 성당과 바티칸의 산 삐에뜨로 성당을 보기전에는 마음속으로
최고의 성당이라 생각했었다.



톨레도 대성당의 자랑거리인 성체 현시대..  코르도바에도 이것과 비슷한것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고..
엔리케 아르페(Enrique de Arfe)라는 사람의 작품


다양한 종류의 마자판..  선물용 세트로도 팔고 있었는데..  우리는 들어가서 낱개로 몇개 사와서 맛만보았다.
우리나라 밤과자와 맛이 비슷하다...  너무 달아 특별히 호감 가는 맛은 아니다.


이것도 살까 말까 무지 고민했다...  금속 공예로 된 체스판...  보기보다는 안비쌌던걸로 기억한다.
몇만원 정도??  보기에는 수십만원 될줄알았는데..


'똘레도도 식후경'  우리는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햄버거 세트를 먹었다...  우리나라에 없는 메뉴를 찾아 시켜 보았다.
상당히 인상적인 맛..  굉장히 크고 안에 내용물도 많이 들어있었다.


맥도날드 앞에 있는 소꼬 도베르 광장..


소꼬 도베르 광장은 똘레도 투어의 기점으로 삼기 좋은 곳이다...


돔 모양의 가판대에서는 각종 잡지와 복권 같은것을 팔고 있다.


날이 더워지니 벌써부터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긴다.



똘레도 대성당의 뒷문이다.

 

골목 사이로 알까사르가 보인다.  똘레도에서는 특별히 행선지나 뭘 볼까 정하지 말고 발이 닿는 곳으로 그냥 가보면 된다.

 

대부분 지도를 보면서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냥 정처 없이 도시 자체를 즐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멋진 기념품 가게도 만날수 있고..


이런 기념품을 보면 지갑에 저절로 손이가는 것은 당연하다.


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지 그냥 걷기만 해도 안다..


걷다보니 중간에 벤치가 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보는 전망은 끝내준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햇빛을 맞으며 이런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바로 옆에 벤치에서는 한국여학생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우리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들었는지 반가워 하며 같이 사진을 찍어준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미니 삼각대르 벤치에 올려 두고 사진을 벌써 같이 찍었기에.. 괜찮다고 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던 여학생 두명은 배낭에서 뭔가를 꺼낸다.
우리가 샀던 마자판...  이곳에 오면 누구나 사는 품목인가 보다.
둘이서 하나씩 입에 넣더니 인상을 쓴다..
거의 우리와 같은 반응..  별로  맛있거나 권하고 싶은 과자는 아니다...
우리나라 제과점에서 파는 '밤과자' 맛이라니까.. 


톨레도 길거리에는 골목마다 이런 이정표들이 자주 눈에 띤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체스 말과 체스판..   하여튼 이곳이 여행 마지막 코스였다면 내 지갑에 돈이 남아나지 않았을듯 싶다.





수도원 건물인듯 하다...


수도원 외부..   우리가 가져온 지도에는 없는 건물이다.

수도원 옆에 햇빛을 맞으며.. 여행서적을 탐독 중인 도도..


햇빛을 받아 멋져 보이는 수도원..  이 수도원 이름을 반드시 찾고 말리라.


이제는 똘레드를 떠나야 할시간..  도시가 높은데에 있으니 아래로 내려가기위한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올라올땐 걸어 왔는데.. --+

다시 우리 차가 주차되어 있는 여행안내소 쪽으로 왔다.
도도가 따듯한 커피가 먹고싶다고해서.. 안내소 안에 들어와보니 반가운 커피 자판기가 있다.


안내소내 설치되어있는 커피 자판기와 스낵 자판기..

 

조금은 생소한 생수 자판기다.


유럽에서는 대부분 커피자판기가 원두커피가 갈려서 나오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인스턴트 커피를 사용하지 않는다.



4시가 훌쩍넘었고 .. 기온도 25도..  조금 덥다 생각했다.  4일전에 눈보라 치던 그 스페인이 맞나 싶다.


이곳 주차장은 우리가 왔을때는 무료였는데.. 추후에도 무료일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숙소 주인아주머니가 말씀하신 톨레도의 모습이 가장 멋지게 보인다는 포인트를 찾아 간다.
차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알까사르 모습이 멀리서 보면 정말 멋지다... 저곳이 톨레도에서 가장 높은곳이구.. 가장 잘보이는 건물이기도 하다.


똘레도 주위를 흐르는 따오강(Rio Tajo).. 청록색 강물은 그다지 깨끗한 느낌을 주지는 않지만..
따오강 건너편에는 승용차 7~8대 정도를 주차할수 있는 간이 주차장이 있다.
이곳이 톨레도 사진을 찍기에 가장 좋다는 그 장소이다. 


모처럼 뽀샤시 옷을 입은 도도가 나름 폼을 잡는다.


멋진 똘레도의 모습.. 세고비아도 그렇지만  도시전체가 거대한 요새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 똘레도는 거의 2000년간 수도였었다고 하니...    


똘레도와 떼호강.. 저 다리를 막아놓는다면 이 강이야말로 천연의 해자 역활을 했었음이 틀림없다.
하기는 최근 20세기에 스페인 내전당시도 플랑코 총독이 톨레도 알카사르에서 격전을 치뤘다고 하니..


돌아가는 길에 고속도로를 탔다... 그런데 차가 하나도 없다.


역시나 만든지 얼마 되지 않은 도로다 싶더니  네비게이션에서 찾기 불능..
유럽에서는 네비 맵 업그래이드가 모두 유료이고.. 새로 만든 도로도 잘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듯 하다.


분명 올때는 고속도로로 와도 무료였는데 이곳은 유료이다.  톨비가 8유로나 한다. 한시간도 안달렸는데..만 4천원이라니..
그래서 차들이 없었구나 ㅠㅠ


차보기가 어려워 돈낼때에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ㅠㅠ
마드리드에서 톨레도 갈때 절대 AP-41 도로는 가지 말것 !!!!


다시 숙소근처로 왔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구름한점 없는 이곳은 바로 스페인...


똘레도 투어는 이번 유럽 여행중 가장 즐겁게 다닌 곳이 었다.
똘레도는 스페인의 3대 화가인 엘 그라코(El Greco)가 살던 곳이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 자체를 즐기며 특별히 지도같은걸 보지 않고 다녔던듯 하다.
그래서 그의 집을 비롯해서 그의 대표작인 '오르가스백작의 장례'가 있는 산또 또메 성당도 빼먹고 그냥 왔지만
너무나 즐거웠다.
뭐 쁘라도 미술관에서 이미 그의 작품을 많이 봤으니..  한 두작품 빼먹었다고 아쉬울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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