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동루트

에탑호텔(가칭(Garching), 뮌헨 외곽지역 ➜ BMW 벨트, 박물관(올림픽 공원) ➜ 다하우 수용소 ➜ 뮌헨 구시가지  ➜ 이비스 호텔(Muenchen Parkstadt Schwabing)

 

구글 지도 링크(Shift+마우스클릭 해서 같이 보세요)

 http://maps.google.com/maps/ms?ie=UTF8&hl=ko&msa=0&msid=110906395392392108239.000462f7a3b15554f2739&ll=48.229247,11.466293&spn=0.397488,1.054001&z=11&iwloc=00048b9594ea3c438ed2f

금일 숙소 : 이비스 호텔(Hotel Ibis Muenchen Parkstadt Schwabing)
차랑 이동 거리(금일 110 km, 누적 12,990 km)





BMW 벨트 주차장에서 나와서 호텔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호텔 체크인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보통 호텔 체크인은 오후 부터 시작한다.  오전에는 대부분 청소와 소모품을 새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조금 더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구 시가지 쪽으로 가게 되면 아무래도 주차장을 찾으러 다니다 시간을 다 허비할듯 하고..    고민을 하다가 뮌헨 외곽에 있는 다하우 수용소를 가보기로 했다.

예정에는 없는 코스였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었던 세계 2차대전의 흔적을 찾아 볼수 있는 의미있는 곳이다.     다하우 수용소는 2차대전때 나치에 의해 행해진 인체실험으로 악명이 높은 곳이다. 
10여년동안 20만명이 수용되었었고, 3만여명의 유태인이 희생된 곳이다.


갑작스러운 예정지 변경에도  네비게이션에서  쉽게 목적지를 셋팅하고 안내하는데로 가기만 하면 된다.


지나다 보면 저렴한 수퍼마켓 체인인 리들(Lidl), 알디(Aldi) 간판을 쉽게 볼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다하우 수용소는 다하우 라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뮌헨 북서쪽에 위치한 다하우(Dachau),  현재는 도심부를 벗어난 평화로운 주택가, 베드 타운일 뿐이다.


수퍼마켓에서 구입한 캔디.   한국에서라면 눈길조차 주지 않는 품목이지만, 외국에 와서는 왠지 처음보는 것들이나 신기해 보이는 것들은 사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아랫 편의 요구르트 캔디는 한국의 조카들에게 사다주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였다. (이후에 수퍼마켓을 들릴때마다 혹시나 이 캔디가 있지 않을까 찾아보곤 했다.)
 


주차장 앞에 있었던 안내판.,. 다하우 행정구역내 볼거리에 대해 안내 하고 있다.
 

수용소 앞의 주택가.. 역사상 가장 끔찍했던 장소 바로 옆에 평화로운 마을이라...
뭔가 아이러니 한 풍경이다.


수용소를 감시하던 군인들의 사택이라고 한다. 


수용소의 평면... 잘은 모르지만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은 중앙에 선이 그려진 부분인 듯 하다.


매일 아침마다 사진처럼 연병장에서 점검식을 거행 했다고 한다. 


수용소 전경.. 


수용소에 끌려온 사람들을 감시했던 감시탑..  


수용소 내부다.  2차대전 당시 그대로를 보존해 두었다.  왠지 음침하고 기분이 나빠지는 곳..


한켠에는 2차 대전 당시를 상세하게 안내하는 전시관이 있었다.


제대로 읽어보려면 하루종일 이곳에 있어도 부족할 만큼 방대한 양이다.


전시된 안내판들에는  2차대전 당시의 국가의 정황, 정치, 외교적인 상황 들에 대한 자세한 묘사들과, 이 수용소에서 나치가 행한 잔인한 행위들에 대해 아주 세부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심지어는 끌려온 죄수의 하루 스케줄까지 자세하게 묘사할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당시에 수감 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신상 명세 까지도 기록해 놓고 있었다.


수용소의 모형.. 현재의 수용소는 모형에서 보는 수용소의 일부만 보존해 놓은 듯 하다.


1997년도에 세워진 수용소 기념 조형물이다.  담을 넘어 자유를 갈망하는 수감자를 표현 한 듯 하다.


캠핑 트레일러를 끌고 온 개념인(?)도 있었다.

주차장에는 페라리 동호회 모임이 있었는지.. 붉은색 페라리가 여러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관심있게 보고 있었고, 대부분 사람들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



다시 뮌헨 시내로 이동한다.

수용소를 떠나는 마음 한 켠이 무거워 짐을 느낀다.
이런 내용을 버젓히 전시하는 것을 어떻게 보면 독일인들에게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이러한 시설을 잘 보존해 놓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오히려 이를 축소,은폐하려 들고 또한 교과서 왜곡 등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후손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 때문에 일본의 젊은이들은 우리의 과거사로 인한 사과 요구나 종군 위안부 문제 등에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냐는 식으로 혹은 지난 일로 너무 피곤하게 하는 것 아니냐고 반응 하곤 한다
.

대륙의 기질과 섬나라 기질의 차이일까..?


만약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나라가 일본이 아니었고 중국이었다면..  지금과 달랐 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본다.

혹시 내가 잘못했는데 어쩌라구..?  하고 배짱을 튕기고 있지는 않을까?? 
일본처럼 적어도 변명으로 일관하지는 않을 듯 한데 말이다.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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