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라인 페리 선착장➜감라스탄 지구(스토르토에르 광장, 대성당, 왕궁)➜국회의사당➜유르고르덴 섬(바사호 박물관, 스칸센 박물관)➜세르겔 광장➜회토리에트(스톡홀름 콘서트 하우스)➜중앙역➜초원의 집(한인민박)


◎ 구글지도 링크(Shift+마우스클릭 해서 같이 보세요)
http://maps.google.co.kr/maps/ms?ie=UTF8&hl=ko&msa=0&msid=216926685947982424011.0004636900e13e3b5d97e&ll=59.327323,18.079376&spn=0.038093,0.13175&z=14

◎ 금일 숙소 :
초원의 집 (in Tullinge)
◎ 금일 이동루트 




헬싱키(Helsinki)에서부터 타고온 페리 신데렐라 호를 뒤로 하고.. 


스톡홀름(Stockholm) 시내를 향해 이동한다.


페리터미널에서 바다 너머로 스톡홀름의 TV방송타워(Kaknastornet)가 보인다.
170m에 달하는 타워는 방송 송신용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서울의 남산타워와 마찬가지로 스톡홀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며, 전망대 중 하나다. 

여행 계획을 세울때는 꼭 가보려고 했던 곳이었는데, 막상 이곳에서는 가보진 못하고 멀리서 사진으로만 남겨오게 되었다.



헬싱키로 넘어갈때는 시간이 없어서 그냥 지나쳐 갔던 감라스탄 지구(Gamla Stan)로 향했다. 

감라스탄 지구에서 스탄(Stan)은 도시나 마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스탄과 함께 스웨덴의 지명에서 흔히 볼수 있는 홀름(Holm), 이나 홀멘(holmen)은 섬을 말한다.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Stockholm) 역시 14개의 섬과 바다와 운하, 호수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보니 뒤에 홀름(-holm)이라고 불리었을 것이다. 


감라스탄 지구와 인접한 슬루센(Slussen) 지역에는 이곳의 상징이라 할수 있는 카타리나 엘리베이터(Katarinahissen)가 있다.
이 엘리베이터는 슬루센(Slussen)지역과 고지대인 쇠데르말름(Sodermalm)지역을 연결한는 특색있는 교통수단이다. 
저 엘리베이터만도 무려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슬루센 지역은 해안가 중심의 보행로가 있는 곳으로 펍과 레스토랑이 많아 밤이면 사람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최근 이곳에 대한 리제너레이션 마스터플랜 (Regeneration masterplan)공모가 실시되었고, 노먼포스터(Norman Foster)의 작품이 선정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용산국제업무단지 설계 공모에서는 아쉽게도 탈락했지만 런던에 있는 스위스 리 보험회사 빌딩 건설 과정이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건축가다. 심지어는 영국에서는 작위도 가지고 있다.

출품작은 <포스터+파트너스(Foster and Patrners)>라는 회사명으로 출품되었는데, 이 회사는 노먼포스터가 설립한 회사이다.


슬루센 지역의 자동차 전용도로는 보행자 도로로 바뀔 예정라고 하며, 공모 당선작인 사진과 같이 멋지게 변신하게 될 예정이다.
자료 : http://www.fosterandpartners.com/

 


스톡홀름에서 메탈리카(Metallica) 공연을 하나보다. 내가 무지 좋아하는 뮤지션인지라 반갑다.


감라스탄 지구 입구에는 마치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기마상이 있다. 스웨덴의 국왕 칼 14세 요한(Karl XIV Johan) 국왕의 동상인데, 실제 그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수하장군으로 많은 전투에서 프랑스 군의 승리를 이끈 인물이었다.

나폴레옹 부하가 왠 스웨덴 국왕..?  ^^;;


동상은 뒷편의 리다르홀름 교회(Riddarholmskyrkan)의 첨탑과 잘 어울린다.


국왕까지 수입한 스웨덴과 칼14세 요한(Karl XIV Johan)국왕

나폴레옹의 부하가 왠 스웨덴 국왕??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칼 14세 요한 국왕(Karl XIV Johan)이 즉위할 무렵의 스웨덴은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기는 등 쇠락기를 걷고 있었다. 당시 차기 왕위 내정자였던 칼 아우구스트가 갑자기 급사해 버렸기 때문에 스웨덴의 귀족들은 차기 국왕을 해외에서 찾기 시작했다. 
쇠락기를 걷고 있던 스웨덴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능력 있고, 힘이 있는 지도자를 원했던 귀족들은 나폴레옹의 오른팔이자 황제 즉위후 프랑스군의 원수로 발탁된 인물인 베르나도트(Jean-Baptiste Jules Bernadotte)를 적임자라고 생각하고 그를 국왕으로 앉히게 된다.  
바로 그가 칼 14세 요한 국왕으로, 현 스웨덴 국왕도 그의 후손이다.
프랑스인이었던 그는 아이러니 하게도 반 프랑스 연합군에 참가하여 프랑스 군의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고, 연합군의 승리에 공헌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퇴위한 뒤 그는 프랑스 국왕 자리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합군에서의 반 프랑스적인 행동들 때문에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나폴레옹과 등을 돌린 인물이었지만, 나폴레옹의 부하들중 가장 출세한 인물이었다.



 차안에 있던 검정개..꽤 순해 보인다. 땅떵이가 넓은 나라답게 큰 개들을 많이 볼수 있다.


감라스탄 지구내의 바스테르랑가텐(Vasterlanggatan) 거리에는 기념품과 각종 소품 들을 파는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다.
당연히 관광객들로 붐빈다.  


스웨덴의 기념품 샵에는 살만한 것들도 꽤나 많다.
유럽의 여러 나라를 돌아 다녀도 여기처럼 사고 싶은게 많았던 곳도 별로 없었던 듯 하다.


일단 북유럽에 왔다면 꼭 사가야 할 아이템중 하나인 고블린(Goblin) 인형..


고블린은 서양 민담에서 나오는 떠돌이 요정을 뜻하며 고대 그리스어 <코발로(Kobalos) : 장난꾸러기>에서 유래된 말로,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 혹은 게임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캐릭터다.


스웨덴은 바이킹 후예의 나라답게 각종 바이킹 전사의 인형들도 종류가 많다.
여건만 된다면 이것저것 사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참고 있는 중이다. -_-


뭐니뭐니 해도 스웨덴의 기념품 샵에 빠지지 않는 말괄량이 삐삐..1969년도에 제작된 말괄량이 삐삐는 세대를 넘어 인기를 끌고 있으며, 스웨덴에는 전용 박물관 까지 있을 정도다.

7~80년대 세계 음악을 주름잡았던 아바(Abba)와 함게 스웨덴을 대표할수 있는 문화 상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슴인형.. 핀란드와 마찬가지로 엘크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역시 핀란드나 스웨덴, 캐나다 등 극지방과 접해 있는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도도가 가장 열광했던 양초..초를 켜면 위로 올라가는 대류열로 인해 위에 장식물들이 회전한다.

결국 얘네들은 현재 우리집에 와 있다. ^^;;  촛불을 켜주면 아이들이 특히 좋아라 한다.


특색있는 벽걸이 제품들..


오~  이거 나름 아이디어 상품인 걸..?


성에 대해 개방된 국가답게 관련 상품들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상품 매장이다. 최근 한류의 열풍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 상품은 여전히 일본의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세삼 느끼게 된다.


일본의 대표적인 문구 캐릭터인 리락쿠마..우리나라에서도 꽤나 인기를 끌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보게 될줄은 몰랐다. ^^


어디나 이런 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꼭 있기 마련..


보디샵(The Body Shop)이나 세븐일레븐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볼수 있는 간판이 반갑다.


가게 쇼윈도에 여러 나라 언어로 쓰여진 안내판이 이색적이다.  


다양한 모양의 캔디들..이런 사탕들을 보면 어릴적 말괄량이 삐삐에서 나왔던 사탕들이 생각이 난다.


당시 삐삐는 엄청난 금화를 가지고 있는 부자였었고, 늘 사탕을 사서 애들과 나눠 먹었었지..  ㅋㅋ
힘도 세고, 어른말을 듣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고, 돈도 많고, 마음껏 밖에서 뛰어놀수도 있고, 사탕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심지어는 하늘까지 날수 있는..삐삐는 당시 아이들의 로망이었다.
(특히나 당시 우리나라에서 볼수 없었던 형형 색색의 사탕들에 마음이 빼앗겼었던 1이다. ^^)  



대성당(Storkyrkan)의 첨탑 옆의 언덕위로 올라갔다.  


1279년에 만들어진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왕궁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옛부터 결혼식, 장례식, 대관식 등 스톡홀름의 주요 왕실 행사가 열렸다.


감라스탄 지구의 중심부 언덕에는 조그만 광장이 있다. 구 시가의 중심인 이 광장은 스토르토에르(Stortorget)광장이라 불리는 곳으로 1520년 <스톡홀름 대학살(Stockholm Bloodbath)>이 일어난 장소이다. 스톡홀름 대학살은 당시 북유럽을 지배하고 있었던 덴마크에 반대하는 스웨덴 귀족들을 잡아서 처형했던 사건이다.


이 조형물은 대학살 당시 우물이 있던 자리로, 당시 학살된 사람들을 이 우물에 던져 넣었다고 한다. 

<스톡홀름 대학살(Stockholm Bloodbath)>은 당시 북유럽을 지배했던 덴마크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가져왔고, 스웨덴이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독립 후 스웨덴은 19세기 러시아가 강성하기 전까지 500년 동안 북유럽의 실질적인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광장 한쪽에는 구 증권거래소 건물이 위치해 있는데, 현재는 노벨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노벨 박물관에는 노벨과 관련한 내용 뿐 아니라 노벨상 역대 수상자들에 대한 내용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광장 다른편에는 마치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옛 건물을 연상게 하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서 있어 고풍스러운 느낌을 더하고 있다.

 

대부분 관광지 마다 특색있는 복장을 하고 있는 기념찰영을 해주는 사람들이 꼭 있기 마련인데, 노벨 박물관 앞에는 바이킹 복장을 한 여자들이 관광객과 기념찰영을 하며 돈을 받고 있다.


복장과 외모는 여성스럼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유쾌하고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유쾌함과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저 여성은 늘 행복할 듯 하다.

(3)에서 계속
‡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 - 전철역(Ciutadella Vila Olimpica) - 도보투어 - 전철역(Ciutadella Vila Olimpica) - 숙소

- 금일 숙소 : 까사블랑카 민박 in Barcelona
- 차랑 이동거리(금일 - km, 누적 7,520 km) 

- 이동경로(도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de la Sagrada Familia) -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 - 피가소 미술관(Museo Picasso) - 대성당(Catedral) - 람블라 거리(La Rambla) - 레이알 광장(Placa Reial) - 포르탈 드 라 파우 광장(Placa del Portal de la Pau) - 마레마그넘 쇼핑몰 - 레이알 광장(Placa Reial)



아침에 일어나니 주인 아주머니가 아침 식사를 하라고 부르신다.
모처럼 한식을 먹을수 있다는 생각에 식당으로 올라갔는데.. 주인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놀랍다.
도도 역시 어제  안좋았던 기분도 잊을 만큼.. 모양도 맛도 최고였다.
도도의 아줌마 근성이 발동해서 이것 저것  음식의 비법도 묻기도 하고 ..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곳에 묵고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두명을 제외하고는 내일부터 열리는 학회가 있어서 온 사람들이다.  전자 통신 쪽의 무슨 학회이다.
모 연구원에서 근무하시는 이 박사님, 고려 대학교 박사과정 이 모군, 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 학생 들 ..

식사를 마치고 오늘 하루 어떻게 움직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연구소에서 오신 이박사님께서 오늘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가려 하는데 같이 가는게 어떠나고 물어본다.
우리 둘 외에 다른 일행과 같이 다니는것도 재밌을 거라는 생각에 동조하여 같이 나왔다.

그런데 때아닌 굵은 빗줄기와 바람에 우리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잠시 대피 해있어야 했다.
지중해 지역은 항상 온화하고 햇빛이 짱하게 나올줄 알았는데 말이다.

 
민박집 앞에서 본 장 누벨(Jean Nouvel)이란 건축가가 만든 아그바 타워(Agbar Tower)..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명물이다.
장 누벨은 얼마전 서울시에서 공모했던 '오페라 하우스'에 그의 작품이 선정되었으나 그 비용을 너무 비싸게 불러서 취소되기도 했다.  대신 서울시의 뚝섬에 한화에서 만드는 모 아파트에 그가 설계한 내부 인테리어가 적용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아그바 타워는 얼핏보면 런던에 있는 노먼포스터(Norman Foster)라는 건축가의 작품 '스위스 리 보험회사 빌딩'과 유사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사람의 작품이다.   아~ 그러고 보니.. 바로셀로나에도 노먼 포스터의 작품이 있다고 하던데..

민박집 주인 아저씨 말씀으로는 바로셀로나에 있는 유명한 현대건축물은 이곳의 또하나의 자랑이고. 이로 인해 많은
건축가 지망생들이 이 도시로 견학을 온다고 한다. 


우리 숙소 앞에 있는 메트로 역 Ciutadella Vila Olimpica


서울의 지하철보다는 폭이 작다. 


싸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역에 내리자 길게 늘어선 줄..
다들 성당에 입장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de la Sagrada Familia)의 상징이라면 옥수수 모양의 첨탑.
1882년 공사가 시작되어서 현재까지 공사가 진행중이다.  
18개의 탑중 이제 8개가 올라 갔을 뿐이라 아직도 정확한 완공일자는 모른다.



앞부분 수난을 상징하는 조각은 가우디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입장료는 1인당 12유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까지 같이 구입하면 16유로..


문앞에는 글씨들이 잔뜩 세겨져 있고..


성당 내부의 모습이다.  정말로 여태까지 다니며 보았던 성당과는 많이 다른 파격적인 내부 모습이다.
기둥에 잇는 둥근 홈은 완공된후 전등이 설치된다고..  


내부의 스테인 글라스


우리가 낸 입장료는 이처럼 건축자재를 사는데 사용된다.  내부는 아직도 공사장 분위기이다.


가우디가 완성한 부분이다.  현대 조각과 달리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들..



지하에는 이 성당의 건설과정에 대한 박물관이 있다.


작업실로 보인다.


성당의 모형.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뒤로 산파우 병원으로 이동한다.  이 병원 역시 특이한 건축 형태로 유명한 건물.


병원까지 가는 길에 왠 아저씨 아줌마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무슨 축제같은 건가보다.


산파우 병원에서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의 길은 이처럼 횡하니 일자로 뚫려 있다.


병원의 입구에는 안내판이 나란히 두개가 설치되어 있다.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스승인 도메네크 이몬따네르(Lluis Domenech i Montaner)의 작품이다.


병원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 병원을 건설할시  가우디가  스승을 찾아와서 환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성당이 보이는 방향으로 건물을 지을것을 권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에서는 성당이 잘 보인다.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라 생각했는데 이 당시에는 알함브라 궁전 같이 이슬람 풍의 건축이 유행했다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건물의 돔은 이슬람 풍의 화려한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나 나올만한 건물이다. 아무튼 19세기에는 바로셀로나에 이러한 양식이 유행했다고 하니 ..


병원에서 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있다.  연구소 이박사님이 어제 왔는데 괜찮았다는 해산물 뷔페집에 왔다.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횟감과 초밥들에 우리 부부는 눈이 뒤집혀있는 상태... 
그렇지 않아도 어제 900km 가까히 하루 종일 운전하면서 주로 하는 얘기는  대부분 먹는 얘기였다.
서울 가면 뭐 먹을꺼다.. 하는..  그중에서도 항상 처음으로 꼽히는게 바로 초밥과 회..  정말 그리웠다.
가격은 한사람당 주중은 9유로 주말은 12유로다..   이동네 물가로는 무지무지 싼 가격이다.

어제 드셨음에도 우리 부부를 위해 이 메뉴를 추천해주신 이박사님의 선의가 고맙기만 했다.

오늘의 일정을 계획하신 이 박사님의 안내에 따라 고딕지구로 가는 것으로 하였다.
모처럼 다른사람이 이끄는 데로 쫒아다니니 상당히 편리하다.  

이런맛에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 투어를 하는 구나

식사후 우리는 소화도 할겸 고딕지구까지 걸어가는 걸로 계획했다.


또 다시 만나게 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아직 미완성인채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만큼 경이로운 건물이다.

고딕 지구로 가는 길에 피가소 박물관에 들렀다.
일요일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오늘따라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다행히 줄이 눈에 띠게 빨리 줄고 있어서 우리도 뒤에서서 기다렸다.


30 분가량 기다려서 마침내 입장~~~


역시나 회화작품은 사진 찰영이 금지되어 있어 입구와 출구밖에 찍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의 피가소 박물관은 그가 유년시절부터 그린 습작부터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모방한 연작들이다.


고딕지구의 또하나의 명물 베로셀로나 대성당(Catedral)..

마침 대성당은 일요일을 맞이 하여 무료 개방하고 있었다. 


보수중인 대성당.. 일요일을 맞아 성당앞 광장은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레이알 광장..(Placa Reial)  이곳에 저렴한 플라맹고 공연을 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 다들 같이 보기로 했다.
이 광장에서 유명한것은 가우디가 설계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


일단 람블라(La Rambla) 거리로.. 가서 시간좀 보내고..



바르셀로나의 명물 람블라 거리에는 거리의 악사나 행위 예술가들의 집합소..



람블라스 거리의 끝에는 포르탈 드라 파우 광장(Placa del Prortal de la Pau)이 나오는데 광장중앙에는 스페인의 최고 영웅 콜롬부스의 동상이 있다.  멀리 바다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광장을 지나면 바닷가에 이처럼 멋진 산책로가 나온다.  나무로 만든 산책로의 끝에는 마레마그넘(Maremagnum)이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다.   람블라스 거리에 왔다면 이 쇼핑몰도 한번 들러 보길 바란다. 
중저가의 브랜드와 레스토랑, 커피숍이 밀집되어 있는 복합 쇼핑몰이다. 



정박되어 있는 항구에는  엄청나게 큰 숭어들이 눈에 보일정도로 돌아 다닌다.
사람들이 먹이도 주고 잘 받아 먹고 있는데..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불법이라 이처럼 많은 것이란다.


람블라 거리로 돌아와 서브웨이 센드위치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레이알 광장으로 왔다...   플라맹코를 보기위해~~

이곳에서는 입장료가 불과 한사람당 6유로에 불과하다.
그런데 막상 레이알 광장으로 오니 2유로 할인권을 또 준다.   그러니까 4유로~~
플라맹코 공연은 2~30유로 이상 줘야 볼수 있다고 들었는데.. 

대신 보통의 공연이 1시간 가량인 반면 우리가 들어간 곳의 공연은 30분정도로 조금 짧다.
짧아서 오히려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아직 공연 시작전이다.
자리는 벌써 꽉 차있기에 우리들은 통로 어딘가에 앉아서 봐야 했다.  싼 공연이니 이런것쯤은 감수해야지 뭐


기타를 치는 악사와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가 먼저 흥을 돋우기 위해 나와서 연주를 하면..


좀 있다가 플라맹코 댄서가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다소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원래  플라맹코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집시들의 한풀이 공연이었으니..


플라맹코를 추는 댄서와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를 보면서 기타애들립으로 그 동작을 맞추어 가고 있다.
오랫동안 같이 손발을 맞춘 솜씨이다.


플라멩코(flamenco)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이중에서도 알함브라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에서 시작되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집시들 삶의 애환이 담긴 그 예술에는 그들의 한이 담겨있다.
그래서 댄서들의 표정은 괴롭고 어두운 모습들이다.  이를 그라나다식 플라멩코라고 부른다.

하지만 플라멩코가 세계화가 되다 보니 좀더 밝고 흥겨운 색채가 가미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스타일의 플라멩코는 대도시인 세비야(Sevilla)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어러한 스타일은 세비야 식 플라멩코라고 하고.. 

우리가 본 공연은 딱히 어느쪽에 가깝다고 할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그라나다식에 더 가까운듯 하다.


마지막 무대 인사.. 다소 짧지만 그만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던 공연이었다.


좋은 공연을 보고 났더니 다들 흥에 겨워서.. 숙소에가서 한잔 더 하자고 하고 이동했다.
여기서 또 안타까운 사건이 .. 
내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것이다.  지하철에서...
분명 타기전에는 있었는데.. 타면서 누군가 슬쩍 한것이다.
다음 역에 입구에 있던 한 녀석이 내 지갑을 차에 버리고 슬며시 내렸다.
순간적인 상황이라 쫒아가지는 못했고.. 지갑을 보니 현금은 사라진 상태.. 다행히 카드는 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일행의 분위기는 침울해진 상태.. 자연스럽게 한잔 더하자는 얘기도 쏙 들어갔다...
좋은 경험이 되었다 싶다.

바로셀로나에서는 소매치기에 특히 더 신경써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건만..

잘 몰랐는데 람블라 거리에서 울고 다니던 아가씨들을 꽤 많이 보았는데 대부분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감정의 변화가 큰 서양 사람들(특히 여자들)은 이처럼 소매치기를 당하면 울음을 터뜨리는등 격하게 반응 한다고 한다.

술집이나 카페에 앉아 있으면 30분에 한명 꼴로 울고 지나가는 아가씨를 볼수 있고 람블라 거리에 있는 도난 신고센터에
신고를 하려면 2시간 가량 줄을 서있어야 한다니..  세계의 소매치기 국가대표들은 이곳에 다 모여 있나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면도칼로 핸드백을 찢는다던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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