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 - 까딸루냐 광장 - 대성당 - 왕의 광장 - 바로셀로나 시청 - 람블라 거리 - 레이알 광장 - 보께리아 시장 - 까사 바뜨요
- 까사 밀라 - 구엘공원 - 사그라다 파밀라아 성당

- 금일 숙소 : 까사블랑카 민박 in Barcelona
- 차랑 이동거리(금일 0 km, 누적 7,520 km) 
- 이동경로(유로 자전거 나라 바로셀로나 시내투어, 도보+버스)






오늘은 유로 자전거 나라 여행사에서 바로셀로나 시내 투어를 신청하였다.
집결지는 까딸루냐 광장이다.

기아 자동차 마크가 잘보이는 이곳은 람블라 거리의 시점 까딸루냐 광장(Plaza do Cataluña)
기아 모터스 간판 아래가 우리의 집결 장소


까달루냐 광장은 바로셀로나의 메인 광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광장에는 아침 일찍(?) 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까탈루냐 광장에서 꼭 가봐야 할곳은 바로 엘 꼬르떼 잉글레스(El Corte Ingles)  백화점. 스페인 최고의 백화점으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도 봤다.


시간이 좀 남아서 광장을 둘러보고 우리는 집결장소에 나가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 기다리다가... 
집결 시간이 조금 넘으니 일행들이 모두 도착..  역시나 어디를 가도 코리안 타임은 항상 존재한다.
먼저 람블라 거리에서 가까운 고딕지구로..  

어제 왠만한덴 다 해집구 다녔는데 -_-



어제 왔었던 대성당.. 오늘도 또 왔다.


우리나라는 공사장 한쪽 옆에 조그맣게 그려있을 조감도가 실 사이즈로 벽위 차단막에 그려진다. 
스페인어로 되어있어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텔레포니카라는 회사가 이 성당의 보수공사를 지원한다고 되어 있는 듯..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유럽 전역에 있는 이동 통신회사다. 
우리나라로 치면 LG텔레콤, KT, SK텔레콤 같은거겠지..


대성당 뒷편으로 가면 유명한 왕의 광장(Plaça del Rei)이 나온다.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돌아왔을때 당시 이사벨 여왕이 저 계단위에서 콜롬부스를 맞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저 계댠위에 서서 여왕의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여왕의 부부가 묵었다는 방..  콜롬부스가 여왕 부부를 처음 알현한 장소는 그라나다 왕국을 내몰기 위한
전초 기지였던 꼬르도바(Cordoba)..  였고..  콜롬부스가 돌아왔을때에는 이미 스페인에서 이슬람 새력을
내몬 뒤였다.



중세의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딕거리..  숙소 주인아저씨의 말씀으로는 이처럼 보존이 잘된
거리는 유럽에도 몇 안된다고 하신다.

우리는 그런 곳만 골라가서 그런지 이런 풍경은 자주 본듯 한데.. ^^


왕의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로셀로나의 명물 추러스와 핫초콜렛이 유명하다고 하는 곳..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지에서 쉽게 볼수 있는 추러스가 이 동네 음식이었군.. 


배고플때가 되서 그런지 빵 가게에서 빵들이 나를 부르는 듯 ^^


시청앞에 왔다. 스페인 국기 옆에는 까딸루냐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시청이 있는 광장 그늘에서 잠시 스페인 왕실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가이드 아가씨..


스페인 어로 Hotel은 시청을 뜻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호텔도 Hotel이라고 표시해서 혼동하게 해서 문제지만..


유명한 초콜렛 가게라고 한다. 


레이알 광장(Placa Reial)에 왔다.  어제 플라맹고를 싸게 봤던 바로 그..  (어제의 아픔이 또다시 생각 난다. )
사진속의 가로등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이란다.  원래 공모 당시에는 바로셀로나 전역에 적용하려 했는데..
실제로는 이곳 광장 2개에만 설치 했다고 한다. 



람블라 거리(La Lambla) 예전에는 이곳이 하천이었나보다.. 복개공사를 해서 이처럼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 되었다.
'람블라' 라는 말은 아랍어로 '하천이 흐른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문화의 거리 답게 바닥 타일도 특색있게 조성해 놓았다.


람블라 거리 중간에 있는 보께리아 시장(Boqueria) 시장, 바로셀로나의 유일한 제래시장이다.
사실 유럽을 돌아보다 보면 제래시장을 거의 볼수 가 없다.   있어도 정말 작다..  우리 동네의 시장 보다도 훨씬 작은..


스페인 사람들이 죽고 못산다는 하몽..  고기를 소금과 향신료를 이용해서 절여 만든 햄이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것도 당시에 금보다도 비쌌던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발견하러 간것..


시장에는 특이하게도 초콜렛 가게가 있다.  우리는 초콜렛은 제과점 한켠이나 마트에서만 살수 있는데..
유럽에서는 초콜렛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이  꽤 있다.


이쁘게 생긴 초콜렛이 꽤 많다... 도도는 초콜렛을 좋아하기에 더더욱 관심이 가는 듯 하다.
사실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되면 초콜렛처럼 비상 식량이나 에너지 충전을 위해 좋은 것은 없다.  덕문에 여행 내내 초콜렛은
실컷 먹었다.


여러 모양의 초콜렛과 사탕을 팔고 있다.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2유로 짜리 즉석 조각 과일..  1유로 짜리 과일주스도 많이들 들고 다닌다.


1 kg 단위로 팔고 있다. 


과일을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봐야 한다.  만지면 주인이 뭐라고 한다.  과일을 만지면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가이드 투어는 바쁘게 움직여야 하기에 일단은 눈으로만 돌아보고.. 나중에 다시 올거라고 다짐하는 도도,, 
뭐 재래시장을 천천히 돌아봐야 한다나?


람블라 거리의 보도블록은 물결모양으로..  이곳이 예전에는 물이 흐르던 곳이라는 걸 형상화 한것인가?


다시 까딸루냐 광장으로 되돌아 왔다.   사진은 엘 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

까딸루냐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그라시아 거리쪽으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린곳은 가우디가 설계한 '까사 바요뜨'가 있는 곳

이곳에서 일행과 잠시 헤어졌다..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식사를 하러 가고 도도와 나는 그라시아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라시아 거리는 바로셀로나의 명품 거리로 유명한 곳.. 

가이드 투어는 단독 행에 제약이 있기에..
점심시간 동안 도도와 같이 TOUS 매장을 찾아 갔다가 집결장소로 가기로 했다.
첫날에 비행기를 허둥지둥 탄 덕분에 목걸이를 찾지 못하고 왔었기에..(D-1 참조)
혹시나 같은 모양의 목걸이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엘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과 그라히아 거리에 토스 매장을 찾았는데..
유로화가 비싸서 그런지 우리가 한국에서 구입한 가격의 1.5배..
또 다시 도도의 타박이 시작된다.

'괜히 찾아갔어, 괜히 가격 물어봤어 ㅠㅠ' 

까사 바뜨요(Casa Batlló)는 말그대로 바뜨요라는 사람의 집이다. 
당시의 무명 건축가였던 가우디에게 공사를 맡겨서 만든 집이다.
이 집에 반한 밀라라는 사람 역시 가우디에게 자기 집을 건축 의뢰하게 되었다.


현재 이집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으며 입장료가 16유로나 된다. 
너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비싸다.   당연히 우리는 들어가지는 않았다.


밑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라이사 거리를 건너서 사진을 찍었다.
대충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건물..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가우디는 건물 외관에 이처럼 십자가를 빼먹지 않았다.
현재 성인으로 추대 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외장을 타일을 깨서 만든 었고, 발코니 모양은 마치 해골을 연상키도 한다.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에게는 별 어필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구엘이나 밀라 같이 특이한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가우디의 진가를 알아봤을뿐...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였다. 
까페를 연상시키는 내부 인테리어..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스페인에서는 맥도날드가 딱이다.


까시 밀라(Casa Mila)에 왔다.  물결모양의 외관과 특색있는 굴뚝이 특색있는..


특색있는 굴뚝.. 중세시대의 기사들의 투구 모양을 형상화 한것들이라 한다.
가난한 여행자들은 이처럼 사진의 줌을 이용할수 밖에 없다 ㅠㅠ


옥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데.. 입장료가 역시 비싼편.. 
그래서 그런지 올라간 사람들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듯..^^ 


까사밀라의 발코니는 해초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옥상에 자세히 보면  역시나 이건물에도 십자가 형태를 만들었다.
당시에 스페인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고 특히나 카톨릭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이 많아서 국민들의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라는 가우디에게 제발 십자가 모양을 빼달라고 했는데.. 가우디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밀라는 사업도 어려웠지만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가우디가 괘씸해서 돈을 지급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결모양의 외벽..돌로 만들어져서 현지에서는 La Pedlera(채석장)이라 불린다.


미지급된 돈을 받기 위해 가우디가 소송까지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라의 사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결국은 이 건물은 은행의 소유가 되었다.


그라시아 거리에는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 외에도 특색있는 건물이 많았다.
까사 밀라 길건너편에 있는 빌딩..


까사 바뜨요 근처에 있는 건물인데 왜 철조망 같은걸 감아두었는지는 모르겠다.
막눈인 내가 보니 그다지 멋있는 것도 모르겠는데..


까사 바뜨요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기에..  도도와 나는 그리로 이동..

까사 바뜨요 근처에 있던 제과점..   


키로그람당 32유로인 젤리..  동네가 동네인 만큼 비싸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성인용품점이 눈에 잘보이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까사 바뜨요 뒷쪽으로 돌아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뒷 마당을 구경할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도 참 많이들 들어왔구나..  


까사 바뜨요에 앞에 왔다.  가이드 아가씨가 혼자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에 선택 입장해서 구경중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왜 벌써 왔냐고 물어보기에 들어가지 않고 외관만 보고 왔다고 얘기했다.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어제 소매치기 당한 얘기, 여태까지 지나왔던 우리의 여행지 얘기 등을 했다.

소매치기는 이곳에서는 큰 죄가 아니라고 한다.
'경제도 어렵고 한데..  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라는 생각이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한다.
그래도 마드리드에서는 거리마다 수많은 경찰들이 눈에 띠었는데..
이곳 바로셀로나에서는 사람 많은 람블라 거리에 조차 경관을  보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다 집합하자 이제 구엘공원로 이동~~ 
빠른 이동을 위해 버스로


구엘 공원에 들어오니 돌로 쌓아서 만든 다리ㅏ가 눈에 들어온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를 후원했던 구엘이란 사람이 가우디와 손잡고 만든 대규모 주택단지..
넓은 대지위에 분양된 집은 달랑 3집 밖에 없어서 나중에 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분양 받은 두사람은 가우디와 구엘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가우디의 친구였다고 하니..
실제로는 분양율 제로의 완전 망한 주택 단지인것이다. 


돌로 만든 다리가 위태로워 보여서 건설 직후에는 아무도 다리 밑으로 지나다니지 않았었다고 한다.
오로지 가우디만이 이 길로 산책을 했다고 한다.



이 집은 가우디가 분양 받은 집이다.  현재는 가우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고 상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건축할 시에는 그 도가 지나쳐
성당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공원 중앙에는 이처럼 넓은 광장이 있다. 뒷편 붉은 건물은 구엘 저택이다.
구엘의 딸은 이 공원을 미국의 부호에게 팔려고 했는데 그 미국사람은 이 공원 자체를 해체해서
고스란히 미국에 옮겨놀려고 시도를 했다.
당연히 스페인에서는 자기네 문화유산을 미국으로 옮겨 가는 것에 대해 많은 매체에서 떠들기 시작했고 곧
여론이 안좋아 졌다. 
그 딸은 고심끝에 돈보다는 명예를 택하려 모든 판매 계획을 백지화 하고 이 공원을 시에 기증후 무료로 개방하였다.
저택 역시 학교로 사용할수 있도록 기증했다.
덕분에 지금 저 건물은 초등학교로 사용중이다. 
이 공원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기에 저 학교의 학생들은 세계 유일의 문화유산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다.  
스페인의 교과서에 이 사실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실리기도 했다.



광장 가에는 사람들이 편히 쉴수 있도록 벤치를 만들어 두었는데 .. 그 길이가 길기때문에 기네스북에
등재 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나무 수종 하나하나, 돌로 쌓은 벽돌 하나하나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우리도 가우디가 만든,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 벤치에 앉아보았다.  허리 부분은 둥굴게 튀어나와 있어
앉아 있으면 허리가 펴지며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광장 지하에는 대형 수조가 있어서 빗물을 받아 여과하여 상수도로 공급하였다고 한다.


마치 그림 형제가 지은 동화속의 과자의 집처럼 생긴 관리동.. 


광장 지하로 물이 흘러 들어갈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건물 역시 관리동인듯..  정문을 지키고 있는 건물들이다.


관리동 뒷편 멀리 지중해가 보인다. 



가우디는 이처럼 타일을 깨서 만드는 방법으로 이 단지를 조성했다.  그래서 인부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우리 민박집 앞에 있는 바로셀로나의 랜드마크중 하나인 포트 올림픽 쌍둥이 빌딩.
구엘공원에서 한눈에 보인다.


한쪽에는 장사치들이 이쁜 머리삔을 팔고 있다. 


공원의 맨 위에는 구엘과 가우디 외에 한사람 더 분양 받은 그 사람의 후손이 아직도 살고 있다고 한다.


돌담.. 그리고 종유석 처럼 튀어나온 천정..  대단한 생각이 든다.


가우디는 건축의 모든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찾았다.  파도를 형상화 한 교각.. 대단하다는 생각에 앞서서..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뭐 하긴.. 가우디를 가르쳤던 스승은 가우디에게 그는  천재 아니면 바보  둘중에 하나일거라고 얘기했다고 하니..


기둥 역시 평범하지 않게 하나의 예술품을 연상시킨다.  야자수 모양의 기둥과 머리에 물을 지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가??


저 끝쪽에는 토네이도를 형상화 한 기둥도 있다. 



아까 우리가 벤치에 앉아있었던 광장 아래는 이 처럼 생겼다...  기둥의 경계 높이가 일정해 보이지만 원근법을 적용해서 그 착시현상으로 일정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는 뒤로 갈수록 높아진다.



천정에는 역시나 타일을 깨서 만들었는데 따일 뿐아니라 병을 깨서 붙여 놓기도 하고 접시를 깨서 붙이기도 했다.


깨진 접시가 붙어있는 천정..


깨진 병도 붙여 놓았다... 당시에는 이런 타일을 모두 북아프리카에서 수입했고 매우 비쌌는데.. 
주로 깨진것을 얻어와서 붙였기때문에 건설비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멀정한 타일을 사서도 일부러 깨서 붙이는 바람에 인부들의 원성을 샀다고..
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일을 만들어 시키는 상사들이 있지 않은가 ^^



정문쪽으로 아래로 내려오면 이처럼 도마뱀 형상의 조형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념 찰영을 하려고 붐빈다.


하여튼 사람들이 줄서 있으니..  눈치껏 빠른 행동 필수..


까딸루냐 깃발과 개..  수도 꼭지 모양 하나도 신경쓴 모습이다. 


멍쩡한 타일을 이처럼 깨서 붙였다고 한다.


관리동 위에 버섯모양의 탑...


정문에서 보는 구엘공원..  정면 기둥위가 아까 우리가 벤치에 않아 있던 광장이다.



여러번의 눈치와 재빠른 행동 끝에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한  도도..
우리 일행을 벌써 저만치 갔는데.. 


일행들이 간쪽으로 와보니 우리를 두고 사라졌다.  한참이나 헤매고 찾다보니 겨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


구엘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곳은 바로 산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앞..


산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 역시나 어제 우리가 왔던곳, 이 병원을 설계한 건축가는
가우디의 스승인 도메네크 이몬따네르.. 평상시 엉뚱한 면이 많고 독선적이었던 가우디에게는
적들이 많아 스승과도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고...


병원에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쪽으로 걸어간다.


가우디 사후에도 건설을 진행되고 있는데 ..  사진에서 보이는 쪽이 가우디가 생전에 만든 부분이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내용이 있는 면이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가족의 조각..  이 조각에 있는 인물들은 가우디 주변의 인물들을 뽑아서 석고본을 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표정이나 몸이 굉장이 섬세할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는 간난 아이조차도 실제 병원에서 죽은 아기를 가져와 사용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정말로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장의 차이라는 얘기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예수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 내용인데 특이한것..
오른편에 왕이 태어났다는 예언을 듯고 예루살램에 있는 갓난 아이들을 죽이러 다니는 병사가 보이는 가??
이 병사는 특별히 공모를 해서 사람을 뽑아서 그 형상을 석고로 본 떠서 만들었는데 그 사람의 치명적인 단점은
발가락이 6개였다고 한다. 
가우디는 조각할때 그것을 고쳐서 할 생각으로 그 사람을 뽑았는데.. 개념없는 석공이 발가락을 6개로 그냥
두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예수의 탄생 면에 천상으로 올라간 예수가 마리아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것을 조각해 두어서 
생뚱맞다고 생각했는데.. 개신교와 카톨릭이 틀린부분이 바로 이 내용이라고 한다.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는 신격화 되어 있지 않은 반면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도 신격화 되있어서 나중에 하늘에서
성령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가우디는 일부러 예수의 탄생 면에 이를 형상화 함으로써 카톨릭의 독실한 신자임을 강조한듯 하다.   
아래 부분에 튀어나온 것들은 모두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것으로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 


성당 옆에 있는 이 아파트는 언젠가 성당이 완성되면 없어질 건물.. 
이 아파트 자리까지 성당이 건설된다고..  하지만 이 성당이 언제 완성 될지 모르니 ...

하절기에는 바로셀로나 시내 투어가 몬주익 언덕까지 가는 것으로  
‡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 - 전철역(Ciutadella Vila Olimpica) - 도보투어 - 전철역(Ciutadella Vila Olimpica) - 숙소

- 금일 숙소 : 까사블랑카 민박 in Barcelona
- 차랑 이동거리(금일 - km, 누적 7,520 km) 

- 이동경로(도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de la Sagrada Familia) -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 - 피가소 미술관(Museo Picasso) - 대성당(Catedral) - 람블라 거리(La Rambla) - 레이알 광장(Placa Reial) - 포르탈 드 라 파우 광장(Placa del Portal de la Pau) - 마레마그넘 쇼핑몰 - 레이알 광장(Placa Reial)



아침에 일어나니 주인 아주머니가 아침 식사를 하라고 부르신다.
모처럼 한식을 먹을수 있다는 생각에 식당으로 올라갔는데.. 주인 아주머니의 음식 솜씨가 놀랍다.
도도 역시 어제  안좋았던 기분도 잊을 만큼.. 모양도 맛도 최고였다.
도도의 아줌마 근성이 발동해서 이것 저것  음식의 비법도 묻기도 하고 .. 

아침 식사를 하면서 이곳에 묵고있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 두명을 제외하고는 내일부터 열리는 학회가 있어서 온 사람들이다.  전자 통신 쪽의 무슨 학회이다.
모 연구원에서 근무하시는 이 박사님, 고려 대학교 박사과정 이 모군, 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 학생 들 ..

식사를 마치고 오늘 하루 어떻게 움직일까 고민하고 있는데 연구소에서 오신 이박사님께서 오늘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가려 하는데 같이 가는게 어떠나고 물어본다.
우리 둘 외에 다른 일행과 같이 다니는것도 재밌을 거라는 생각에 동조하여 같이 나왔다.

그런데 때아닌 굵은 빗줄기와 바람에 우리는 지하철 역으로 가는 길에 잠시 대피 해있어야 했다.
지중해 지역은 항상 온화하고 햇빛이 짱하게 나올줄 알았는데 말이다.

 
민박집 앞에서 본 장 누벨(Jean Nouvel)이란 건축가가 만든 아그바 타워(Agbar Tower)..  바르셀로나의 새로운 명물이다.
장 누벨은 얼마전 서울시에서 공모했던 '오페라 하우스'에 그의 작품이 선정되었으나 그 비용을 너무 비싸게 불러서 취소되기도 했다.  대신 서울시의 뚝섬에 한화에서 만드는 모 아파트에 그가 설계한 내부 인테리어가 적용되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다.

아그바 타워는 얼핏보면 런던에 있는 노먼포스터(Norman Foster)라는 건축가의 작품 '스위스 리 보험회사 빌딩'과 유사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사람의 작품이다.   아~ 그러고 보니.. 바로셀로나에도 노먼 포스터의 작품이 있다고 하던데..

민박집 주인 아저씨 말씀으로는 바로셀로나에 있는 유명한 현대건축물은 이곳의 또하나의 자랑이고. 이로 인해 많은
건축가 지망생들이 이 도시로 견학을 온다고 한다. 


우리 숙소 앞에 있는 메트로 역 Ciutadella Vila Olimpica


서울의 지하철보다는 폭이 작다. 


싸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역에 내리자 길게 늘어선 줄..
다들 성당에 입장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행렬이다.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emple de la Sagrada Familia)의 상징이라면 옥수수 모양의 첨탑.
1882년 공사가 시작되어서 현재까지 공사가 진행중이다.  
18개의 탑중 이제 8개가 올라 갔을 뿐이라 아직도 정확한 완공일자는 모른다.



앞부분 수난을 상징하는 조각은 가우디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라 현대적인 느낌이 든다.


입장료는 1인당 12유로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까지 같이 구입하면 16유로..


문앞에는 글씨들이 잔뜩 세겨져 있고..


성당 내부의 모습이다.  정말로 여태까지 다니며 보았던 성당과는 많이 다른 파격적인 내부 모습이다.
기둥에 잇는 둥근 홈은 완공된후 전등이 설치된다고..  


내부의 스테인 글라스


우리가 낸 입장료는 이처럼 건축자재를 사는데 사용된다.  내부는 아직도 공사장 분위기이다.


가우디가 완성한 부분이다.  현대 조각과 달리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들..



지하에는 이 성당의 건설과정에 대한 박물관이 있다.


작업실로 보인다.


성당의 모형.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뒤로 산파우 병원으로 이동한다.  이 병원 역시 특이한 건축 형태로 유명한 건물.


병원까지 가는 길에 왠 아저씨 아줌마들의 춤판(?)이 벌어졌다.  무슨 축제같은 건가보다.


산파우 병원에서 싸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까지의 길은 이처럼 횡하니 일자로 뚫려 있다.


병원의 입구에는 안내판이 나란히 두개가 설치되어 있다.


산 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스승인 도메네크 이몬따네르(Lluis Domenech i Montaner)의 작품이다.


병원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이 병원을 건설할시  가우디가  스승을 찾아와서 환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성당이 보이는 방향으로 건물을 지을것을 권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병원에서는 성당이 잘 보인다.



특이한 양식의 건물이라 생각했는데 이 당시에는 알함브라 궁전 같이 이슬람 풍의 건축이 유행했다고..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건물의 돔은 이슬람 풍의 화려한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나 나올만한 건물이다. 아무튼 19세기에는 바로셀로나에 이러한 양식이 유행했다고 하니 ..


병원에서 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어 있다.  연구소 이박사님이 어제 왔는데 괜찮았다는 해산물 뷔페집에 왔다.
오랜만에 보는 신선한 횟감과 초밥들에 우리 부부는 눈이 뒤집혀있는 상태... 
그렇지 않아도 어제 900km 가까히 하루 종일 운전하면서 주로 하는 얘기는  대부분 먹는 얘기였다.
서울 가면 뭐 먹을꺼다.. 하는..  그중에서도 항상 처음으로 꼽히는게 바로 초밥과 회..  정말 그리웠다.
가격은 한사람당 주중은 9유로 주말은 12유로다..   이동네 물가로는 무지무지 싼 가격이다.

어제 드셨음에도 우리 부부를 위해 이 메뉴를 추천해주신 이박사님의 선의가 고맙기만 했다.

오늘의 일정을 계획하신 이 박사님의 안내에 따라 고딕지구로 가는 것으로 하였다.
모처럼 다른사람이 이끄는 데로 쫒아다니니 상당히 편리하다.  

이런맛에 여행사를 통해 패키지 투어를 하는 구나

식사후 우리는 소화도 할겸 고딕지구까지 걸어가는 걸로 계획했다.


또 다시 만나게 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아직 미완성인채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만큼 경이로운 건물이다.

고딕 지구로 가는 길에 피가소 박물관에 들렀다.
일요일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기 때문에 오늘따라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다행히 줄이 눈에 띠게 빨리 줄고 있어서 우리도 뒤에서서 기다렸다.


30 분가량 기다려서 마침내 입장~~~


역시나 회화작품은 사진 찰영이 금지되어 있어 입구와 출구밖에 찍지 못했다.



바르셀로나의 피가소 박물관은 그가 유년시절부터 그린 습작부터 전시되어 있는데..  특히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그림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모방한 연작들이다.


고딕지구의 또하나의 명물 베로셀로나 대성당(Catedral)..

마침 대성당은 일요일을 맞이 하여 무료 개방하고 있었다. 


보수중인 대성당.. 일요일을 맞아 성당앞 광장은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레이알 광장..(Placa Reial)  이곳에 저렴한 플라맹고 공연을 하고 있다.  
오늘 저녁에 다들 같이 보기로 했다.
이 광장에서 유명한것은 가우디가 설계한 가로등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


일단 람블라(La Rambla) 거리로.. 가서 시간좀 보내고..



바르셀로나의 명물 람블라 거리에는 거리의 악사나 행위 예술가들의 집합소..



람블라스 거리의 끝에는 포르탈 드라 파우 광장(Placa del Prortal de la Pau)이 나오는데 광장중앙에는 스페인의 최고 영웅 콜롬부스의 동상이 있다.  멀리 바다를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다.



광장을 지나면 바닷가에 이처럼 멋진 산책로가 나온다.  나무로 만든 산책로의 끝에는 마레마그넘(Maremagnum)이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다.   람블라스 거리에 왔다면 이 쇼핑몰도 한번 들러 보길 바란다. 
중저가의 브랜드와 레스토랑, 커피숍이 밀집되어 있는 복합 쇼핑몰이다. 



정박되어 있는 항구에는  엄청나게 큰 숭어들이 눈에 보일정도로 돌아 다닌다.
사람들이 먹이도 주고 잘 받아 먹고 있는데..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불법이라 이처럼 많은 것이란다.


람블라 거리로 돌아와 서브웨이 센드위치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다시 레이알 광장으로 왔다...   플라맹코를 보기위해~~

이곳에서는 입장료가 불과 한사람당 6유로에 불과하다.
그런데 막상 레이알 광장으로 오니 2유로 할인권을 또 준다.   그러니까 4유로~~
플라맹코 공연은 2~30유로 이상 줘야 볼수 있다고 들었는데.. 

대신 보통의 공연이 1시간 가량인 반면 우리가 들어간 곳의 공연은 30분정도로 조금 짧다.
짧아서 오히려 지루하지 않아 좋았다.


아직 공연 시작전이다.
자리는 벌써 꽉 차있기에 우리들은 통로 어딘가에 앉아서 봐야 했다.  싼 공연이니 이런것쯤은 감수해야지 뭐


기타를 치는 악사와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가 먼저 흥을 돋우기 위해 나와서 연주를 하면..


좀 있다가 플라맹코 댄서가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한다.



다소 표정이 어두워 보인다.   원래  플라맹코는 안달루시아 지방에 집시들의 한풀이 공연이었으니..


플라맹코를 추는 댄서와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를 보면서 기타애들립으로 그 동작을 맞추어 가고 있다.
오랫동안 같이 손발을 맞춘 솜씨이다.


플라멩코(flamenco)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이중에서도 알함브라궁전이 있는 그라나다(Granada)에서 시작되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집시들 삶의 애환이 담긴 그 예술에는 그들의 한이 담겨있다.
그래서 댄서들의 표정은 괴롭고 어두운 모습들이다.  이를 그라나다식 플라멩코라고 부른다.

하지만 플라멩코가 세계화가 되다 보니 좀더 밝고 흥겨운 색채가 가미 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스타일의 플라멩코는 대도시인 세비야(Sevilla)에서 시작되었다. 
그래서 어러한 스타일은 세비야 식 플라멩코라고 하고.. 

우리가 본 공연은 딱히 어느쪽에 가깝다고 할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그라나다식에 더 가까운듯 하다.


마지막 무대 인사.. 다소 짧지만 그만큼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던 공연이었다.


좋은 공연을 보고 났더니 다들 흥에 겨워서.. 숙소에가서 한잔 더 하자고 하고 이동했다.
여기서 또 안타까운 사건이 .. 
내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것이다.  지하철에서...
분명 타기전에는 있었는데.. 타면서 누군가 슬쩍 한것이다.
다음 역에 입구에 있던 한 녀석이 내 지갑을 차에 버리고 슬며시 내렸다.
순간적인 상황이라 쫒아가지는 못했고.. 지갑을 보니 현금은 사라진 상태.. 다행히 카드는 다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일행의 분위기는 침울해진 상태.. 자연스럽게 한잔 더하자는 얘기도 쏙 들어갔다...
좋은 경험이 되었다 싶다.

바로셀로나에서는 소매치기에 특히 더 신경써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건만..

잘 몰랐는데 람블라 거리에서 울고 다니던 아가씨들을 꽤 많이 보았는데 대부분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감정의 변화가 큰 서양 사람들(특히 여자들)은 이처럼 소매치기를 당하면 울음을 터뜨리는등 격하게 반응 한다고 한다.

술집이나 카페에 앉아 있으면 30분에 한명 꼴로 울고 지나가는 아가씨를 볼수 있고 람블라 거리에 있는 도난 신고센터에
신고를 하려면 2시간 가량 줄을 서있어야 한다니..  세계의 소매치기 국가대표들은 이곳에 다 모여 있나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면도칼로 핸드백을 찢는다던지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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