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킹 라인 페리 선착장➜감라스탄 지구(스토르토에르 광장, 대성당, 왕궁)➜국회의사당➜유르고르덴 섬(바사호 박물관, 스칸센 박물관)➜세르겔 광장➜회토리에트(스톡홀름 콘서트 하우스)➜중앙역➜초원의 집(한인민박)


◎ 구글지도 링크(Shift+마우스클릭 해서 같이 보세요)
http://maps.google.co.kr/maps/ms?ie=UTF8&hl=ko&msa=0&msid=216926685947982424011.0004636900e13e3b5d97e&ll=59.327323,18.079376&spn=0.038093,0.13175&z=14

◎ 금일 숙소 :
초원의 집 (in Tullinge)
◎ 금일 이동루트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을 떠나 왕궁앞의 광장으로 내려왔다. 
중앙에는 구스타브 3세의 탑이라 불리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서있다. 구스타브 3세는 러시아와의 스벤스쿠스드 해전에서 승리하는 등 <구스타브 시대>로 불리는 스웨덴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왕이었고, 이 조형물은 국왕이 전쟁중 왕궁을 잘 지며준 스톡홀름 시민들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만든 것이라고.. ^^

오벨리스크(Obelisk)는 고대 이집트에서 부터 세워진 조형물로 태양을 숭배하는 종교와도 관련이 있다.



바로크 스타일의 왕궁(Kungliga Slottet)은 1760년에 약 70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궁전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이 자리에는 요새가 있었다고 한다.


왕족들이 1982년 드로트닝홀름 궁전(Drottningholm Palace)으로 이사한 뒤 궁전 내부는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보물의 방(Skattkammaren)에는 왕궁의 보물중 가장 진기한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역대 국왕의 왕관이 전시되어 있다.
무려 700개의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루비 등으로 장식이 되어 있다고..


현재 이 왕궁은 외국 국민용 숙소나 만찬회 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왕궁 입구에는 군기가 바짝 든 근위병이 서있다.
도도가 옆에 서서 기념찰영을 하고 싶은데, 쉽게 범접하지 못할 근위병의 포스로 인해..    


결국 소심하게 근위병 사진에게 가서 악수를 청하고 말았다는....   -_-
(사진속 근위병 표정이 비웃는 듯 묘하다....ㅋㅋ)


근위병 사진은 공사중인 왕궁 외벽 차단막 위에 인쇄되어 있는 사진이다.
참.. 매일 12시에는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니 그 광경을 보려면 시간에 맞춰서 오는 것도 좋다. (일요일은 11시)


왕궁 너머로 보이는 대성당(Storkyrkan)의 첨탑이 보인다. 대성당에서는 국왕의 대관식 등 국가 주요 행사가 열려왔다.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길 사이로 한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감리스탄 지구 중심에 위치한 또 하나의 명물, 독일교회(Tyska kyrkan) 다.

독일교회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을 이끈 독일인들이 만든 교회이기 때문에 불린 이름이다. 처음에는 카톨릭 교회였지만 종교 개혁 이후에 북유럽은 대부분 개신교로 바뀐터라 현재는 루터교 교회로 사용되고 있다.
한자동맹은 발트해 연안의 독일의 도시가 중심이 된 상업적인 동맹이었으나, 영국과 네덜란드가 바다를 호령하면서부터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요트가 대중화된 스웨덴에서는 낚시 역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레포츠중 하나다.


새로운 건물이 나타날때마다 여행서를 찾아보기 정신없는 도도..
이 네덜란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은 1668년도에 만든  귀족의 집(Riddarhuset)이다. 이곳에서 귀족계급이 처음으로 의회를 열었다고 한다. 스톡홀름에서의 첫 날에도 지나쳤던 곳이다.



귀족의 집 앞에 서있는 동상의 주인공은 스웨덴을 통일했던 구스타브 1세(Gustav I)의 동상이다.

이 앞 포스트에서 <스톡홀름 대학살>사건에 대해 언급했었다.
이 사건으로 반 덴마크 세력이 결집했고, 스톡홀름 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구스타브 1세는 결집된 반 덴마크 세력을 등에 업고 스웨덴을 통일 했다.


리다르홀름 교회(Riddarholmskyrkan)의 첨탑이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띤다. 

감라스탄 지구는 스타드스홀멘(Stadsholmen), 리다르홀멘(Riddarholmen), 헬게안스홀멘(Helgeandsholmen) 등 총 3개의 섬으로 이루어 졌다. 
리다르홀름 교회는 리다르홀멘 섬에 위치하고 있기에, 부르기에 따라서 리다르홀멘 교회라고도 불린다.
홀름(-holm)이나 홀멘(-holmen)이나 모두 섬이라는 의미인데 생각해보니 서울에도 같은 지명을 <뚝도> 혹은 <뚝섬>으로 부르고 있는 곳이 있다. (엉덩이나 궁뎅이나 히프나 볼기짝이나... ^__^)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감라스탄 지구내에서도 이 리다르홀름 교회는 더욱더 특별하다.
13세기에 만든 이 건물은 스톡홀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이고, 역대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스톡홀름(Stockholm)이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 이유는 운하와 섬으로 이루어진데다, 도시 전체를 감도는 고풍스러움 때문이다.



현재의 스톡홀름은 인구 80만의 대도시로 처음에 도시가 형성된 곳은 이 감라스탄 지구에서 부터이다. 역사적인 상징성 때문인지는 몰라도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80만명이라면 왠만한 도시 인구가 100만이 훌쩍 넘는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약간 약소해 보이기도 하다.^^)

감라스탄 지구중 헬게안스홀멘(Helgeandsholmen)섬은 전체가 국회의사당(Riksdagshuset)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1905년도에 만들어진 네오바로크 양식의 이 건물은 대부분 나라의 국회의사당이 그렇듯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 넓은 공간을 국회건물로 사용하니 했더니 일부분은 스웨덴 국립은행(Sveriges Riksbank)도 같이 사용중이란다.   

새로운 건물이 나타날때마다 여행서적을 찾아보고 있는 도도..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 이라고 귀가 아프게 잔소리를 한 보람이 있다. ㅋㅋ 


외국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이라면 왠지 영어라도 같이 써주면 좋으련만..


국회의사당 건물은 외관만 구경하고서는 그냥 통과중..ㅋㅋ


의사당 외벽에 붙어있는 2층으로 된 가로등이 이색적이다.


국회의사당을 지나 말라렌 호수를 건너는데 멀리 스톡홀름 시청이 보인다...월요일에 이미 둘러봤던 곳이라 오늘은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이다.


이 깨끗하고 복지정책이 잘된 곳에 왠 걸인인가 하고 봤더니 여우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조형물.. 완전 낚였다.  ㅋㅋ 
왠지 동전이라도 하나 놔주고 가야 할 듯..
이 시선을 끄는 작품은 웨일즈의 여류 조각가 로라포트(Laura Ford)의 작품이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 광장(Gustav Adolfs torg)이다. 광장의 이름은 아마도 중앙에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동상이 있기 때문에 불린 듯 하다. 스웨덴을 통일했던 구스타브 1세의 손자이기도 한 그는 북방의 사자, 혹은 설왕(雪王)으로 불린 인물이다.


문무를 겸비한 그는 결국 전쟁터에서 전사했지만, 스웨덴을 강대국 반열에 올려놓은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는 호수 건너 멀리 보이는 왕궁(Kungliga Slottet)과

국회의사당이 있는 감라스탄 지구를 뒤로하고 유명 박물관이 모여 있는 유르고르덴(Djurgaden)섬으로 이동했다.   


국회의사당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는 여신.. 방패를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전쟁의 여신 아테나(Athena)로 보인다.
로마신화에서는 미네르바(Minerva)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면 붉은색의 건물은 130년의 역사와 스톡홀름의 최고의 호텔로 손꼽히는 그랜드 호텔(Grand Hotel)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또하나의 국가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Oslo)에도 그랜드 호텔이 있는데 거의 같은 시기에 만들어 졌다.

약간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전차가 길가에 서있다.


그런데 경찰차들이 몰려오는 것을 보니 무슨 사고가 났나보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인지라 우리도 잠시 서서 사고처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경찰들이 부상자를 구급차에 싣고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다친 사람은 경찰 한명.. 그것도 여자 경찰 분이다. 상황을 보니 다리를 좀 다친 듯 하다.


무슨 큰일이라도 난 양 경찰차 들이 속속히 도착하고 있다. 
큰 사고도 아닌듯 한데 이 곳 경찰들은 상당히 요란스러운 면이 있는 듯... 


오벨리스크 모양을 한 조형물이 있어서 뭔가하고 자세히 드려다 보니..


현재의 환경의 지표를 수치로 나타내는 것이다.


조형물 아래는 친절하게도 영어로도 설명을 해놓았다. (왠일이냐.. ?)
여러 환경 지표들이 있었는데 공기의 오염도, 하수배출량, 바람의 강도(풍속)..뭐 이런 것들이었다.


바다 건너 편에는 해군 총사령부를 등 군사시설이 있어 해군의 섬이라 불렸던 셰프스홀멘 섬((Skeppsholmen)이 보인다.
현재는 여러개의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어 <예술의 섬>으로 불리워야 할 듯 하다.


멋진 벤치가 보이면 잠시 쉬었다가 주변 경치를 지겨울때가지 구경하는 여유가 있는게 자유여행의 매력이 아니겠나..ㅋㅋ


해안가에 위치한 노상카페는 낮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열심히 정독을 하시는 분이라면 위에서는 호수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왜 해안가라고 얘기하는 지 의아하게 생각할 듯 하다.
사실 스톡홀름은 말라렌 호수와 발트해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어느쪽이 호수고 어느쪽은 바다가 되는데 정확한 경계를 나누기는 어렵지만 대충 감라스탄 지구를 지나면 바다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ㅋㅋ


드디어 유르고루덴 섬(Djurgaden)이 보인다.
사실 페리 터미널에서 부터 이곳까지 걸어서 오기는 조금 먼 거리이긴 하다.


유르고루덴 섬으로 들어가는데 북방민족 박물관(Nordiska Museet)이 가장 먼저 우리의 시선을 끈다.

유르고덴 섬은 스톡홀름 중앙에 위치하며, 역사적인 건물과 박물관이 모여 있는 곳이다.
섬의 대부분은 왕실이 소유한 땅으로 있는 드넓고 녹지가 보존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이 울창한 녹지를 보호하기 위해 일체의 개발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바람직한 일인듯 하다. ^^)



섬내의 주요 시설의 위치를 개략적으로 표시한 안내판.. 
우리는 가장 먼저 400년 전의 전함을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바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4)에서 계속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베를린 마루방 민박) ➜  글리니케 다리 ➜ 상수시 궁전과 공원 ➜ 빌머스도르퍼 거리 ➜ 숙소(베를린 마루방 민박)

❙구글 지도 링크(Shift+마우스 클릭 해서 같이 보세요)
http://maps.google.co.kr/maps/ms?ie=UTF8&hl=ko&msa=0&msid=216926685947982424011.00046318ad894bf7d6032&ll=52.462076,13.180161&spn=0.183243,0.527&z=12
금일 숙소 : 마루방 민박(한인민박 in Berlin)
❙금일
자동차 이동거리 : 60 km



아침 식사를 하고 커피까지 마시면서 숙소 주인 아주머니의 얘기를 듣다보니 시간이 10시가 훌쩍 지났다.  매번 나이어린 학생들만 상대하다가 우리같이 조금 늙은(?) 손님이 반가우셨나 보다. ^^
오늘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 궁전이었던 상수시 궁전(Sanssouci)과 공원을 보려 한다.


상수시 궁전으로 가기위해 베를린(Berlin)과 인접한 도시 포츠담(Potsdam)으로 이동한다.  포츠담은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주의 주도이다.



상수시 궁전까지는 숙소에서 약 30km 정도 떨어져 있고, 고속도로로 잘 연결되어 있다.


거리상으로 보면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가깝지만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는 독일에서 만큼은 최대한 빠른 코스로 가려고 한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었다.  양 옆에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진 1번 국도의 풍경이다...  
독일 사람들은 세상의 나무가 모두 없어지는 날 자신들의 나무를 벨 것이라고 얘기 할 정도로 숲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왠지 시골인심이 팍팍 묻어날 것만 같은 호텔


포츠담과 베를린의 경계인 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ucke)이다.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는 다리이지만 소련과 미국의 양국 냉전시대에는 체포된 스파이를 교환하는 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 

영화에서 매번 보던 다리 양끝에서 서로 차를 세워 두고 스파이를 교환하던 모습은 바로 이 다리에서 모태가 되어서 만들어 진 것이다.   -> 이 사실을 듣고 나면 이 다리가 조금 특별해 보이지 않는가??  ^^


그리고 글리니케 다리(Glienicker Brucke)가 있는 호수 어딘가에 누드 해변이 있다던데,  시간이 되면 한번 가보련만 .... ^^;;


글리니케 다리를 건너면 포츠담 시내로 접어들게 된다.  


어디서나 옛 모습을 잘 간직한 모습에서 살짝 부러움이 생긴다.


상수시 궁전 앞의 풍경..  이제부터는 차를 세워 둘곳을 찾으면 된다.


상수시 궁전 인근에 주변이 멋진 숲으로 이루어져있는 괜찮은 주차장이 있다.  가격도 한시간에 0.5유로로 매우 저렴한  곳이다. 그런데 막 코인머신에서 동전을 넣으려고 하는 순간 자동차로 출발중인 아주머니가 시간이 남는다며 자신의 티켓을 주셨다.    티켓을 보니 어찌나 시간도 많이도 끊어 놓으셨는데 오늘 오후 5시까지 주차해도 될만큼 시간이 된다.  우리도 그냥 받기만 할수 없어 한국에서 준비한 북마크를 하나 드렸다.  ^^    

비록 천원짜리에 불과한 북마크지만 한국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어, 받는 현지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차를 세워두고 상수시 궁전으로 걸어가고 있다.  포츠담은 굉장히 큰 대도시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수수하고 인정 넘치는 시골스러운 도시다.


상수시 공원의 안내도..  상수시 궁전은 이 공원안에 있다.


상수시 공원의 입구.. 


입구에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하나 서있다.  한때 프로이센이 유럽 대륙을 호령했을 시절 어딘가에서 가져 왔을 것이다. 
이 오벨리스크에는 꽃과 번영의 여신인 플로라(Flora)와 나무의 요정인 포모나(Pomona)가 장식되어 있다.


베르사유(Versailles) 궁전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궁전 답게 정원이 엄청나게 넓다.


상수시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바로 회화 갤러리(Bildergalerie)이다.  1763년에 문을 연 이 갤러리는 반다이크와 루벤스, 그리고 카라바조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기하학적인 무늬로 조성된 프랑스식 정원의 중앙에는 꼭 이런 분수대가 있어야 꽉 차여진 느낌이 든다.  이미 이 궁전을 만들던 당시에 일류 건축가는 프랑스식 조경 설계를 할수 있는 능력이 필수였고, 귀족이나 왕족들은 자신만의 궁전과 정원을 갖는 것이 유행이었다. 


프랑스식 정원은 원근법을 중시하여 일렬로 나무를 심고 소실점이 그 중앙 한 곳으로 모이게끔 만들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상수시 공원의 입구에 있던 오벨리스크에서도 보았지만,  프랑스식 정원에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이나 영웅들의 조각이 빠지지 않는다.  


기하학적이고 원근법에 치우친 프랑스식 정원은 너무 인공적인 느낌이 들지만,  모처럼 확트인 공간에 오니 기분이 좋아진다.


상수시 궁전은 <바인베르크테라세(Weinbergterrasse)>라고 불리는 계단식 포도밭과 덩굴로 이루어진 언덕 위에 있다. 
바인베르크테라세를 번역하면 포도밭 테라스 정도 된다.  


이 계단식 포도나무 정원은 백성들을 사랑하기로 유명했던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sse)이 백성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심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백성들에게 나눠 줄 정도로 포도나무가 많아 보이지는 않다.


포도나무 정원에서 내려본 정원과 분수대..  기하학적인 모양이 프랑스식 정원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훗날 독일의 로코코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이 된 이 궁전은 평소 예술가적 기질이 풍부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이 스케치 한 것을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궁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대부분 이곳에서 지내다 죽었다고 한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여름 궁전인 상수시 궁전은 프랑스어로 <근심 없는 궁전>이란 뜻이다. 프랑스 문화에 심취했던 프리드리히 대왕이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해서 만든 덕분에 <프로이센의 베르사유>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만든 궁전이기는 하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남에게 보여주는 호화로움 보다는 휴식을 취하고 미술과 문학 활동에 전념할수 있는 수수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한다.



궁전 동쪽에 설치된 청동상..


궁전 뒷편에 궁전 입장 티켓오피스가 있다.  그 옆에는 조그마한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영국의 포트메리온 도자기를 팔고있어 의야해 했다.  독일에도 마이센 자기 등 유명한 도자기 회사가 있는데 하필이면 영국제품이 이곳에 ..? 

티켓 오피스에서 입장권을 산다고 해서 바로 입장 할수 있는 것은 아니고 30분정도 뒤에 입장할수 있다.


상수시 궁전 뒷편에는 바깥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다.  시간도 남았는데 잠시 나갔다 들어오기로..


궁전 밖으로 나오니 가장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은 네덜란드식 풍차다. 


간 큰 풍차의 주인은 궁전때문에 바람이 막혀서 풍량이 줄었다고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보상을 요구 했단다.
현재는 무슨 레스토랑로 사용된는 듯 하다.


풍차 인근에 있는 포츠담의 여행 안내센터.. 이 곳에서 무료 관광지도를 받을수 있다.


시간에 맞추어 상수시 궁전에 입장했다. 들어가면 영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하나씩 지급되는데 대신 내부 사진찰영이 엄격하게 금지가 되어 있다.   따라서 내부의 로코코 양식의 화려한 가구나 내부 인테리어를 사진에 담아올수 없었다.  
 
베르사유 궁전에 영향을 받아 만든 궁전이지만 크기는 베르사유에 비해 아담한 단층 건물인지라 내부 투어시간도 생각보다 짧았다.  궁전을 나오기전에 꼭 해야 할것은 화장실을 들르는 것이다.    이 넓은 상수시 궁전과 공원에 관광객을 위한 변변한 화장실이 하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0.3유로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_-


상수시 궁전 옆에는 프리드리히 대왕이 그가 사랑했던 개와 같이 잠들어 있다.   그는 생전에 주변의 사람들 보다 개를 더 신뢰했다고..


포도나무 옆에 철문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는 모르겠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 궁전을 너무나 사랑했다.   선왕이었던 아버지에 의해 사형에 언도되었다가 집행되기 직전 취소된 적도 있었을 만큼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그는 아버지의 도시인 베를린을 싫어해서 이곳에서 모든 업무를 처리했다고 한다.


이 멋진 포도밭 테라스를 포함한 상수시 궁전과 공원은 유네스코에 지정된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포츠담(Potsdam) 시를 <기쁨의 정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도시로 만들었다.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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