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이동루트

오늘은 현지 가이드 투어로 유명한 '자전거 나라'에서 하는 대영박물관과 네셔널 갤러리 투어를
신청해서 참여하는 날이다.. 

숙소 - 토튼햄 코트 역(집결장소) - 대영박물관 - 레이스터 광장(TKTS) - 네셔널 갤러리 - 숙소

- 금일 숙소 : 런던1존 시내 민박 in London
- 차량 이동거리(금일 : 0, 누적 3,120km)


- 이동경로 (버스+도보) 




아침 10시에 토튼햄 코트 역에서 집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숙소앞에서 24번 버스는 그야말로 만능버스라고 불릴 만큼 주요 지점을 다 정차한다.
역시나 집결장소까지 이 버스를 이용해서 가기로 했다.

집앞이 종점인 것을 이용해서 역시나 2층 맨앞자리를 선점...
시티투어 버스가 부럽지 않다.

2층버스에서 보는 시내 풍경.  영국의 수퍼마켓 체인중 하나인 Sainsbury


뮤지컬 빌리엘리어트(Billy Elliot)를 상영하는 극장이다.
이 극장은 통상 웨스트 엔드라고 불리는 극장 밀집가가 아닌 빅토리아역 근처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런던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tkts에서 할인율이 0%이다.(할인이 안된다.)
영화의 내용을 뮤지컬로 각색한 작품이다.


2층 맨 앞자리에서 내려다 보면 정말 거리가 한눈에 보인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과 빅벤, 런던아이가 차례로 보이는 풍경..


토튼햄코트역에 도착했다.
3번출구앞에서 10까지 보기로 되어있는데..
도착해서 보니 도대체 3번 출구가 어떤건지 알수가 없다.
우리나라처럼 출구에 친절하게 출구번호를 써주는 서비스 정신이 이 사람들한테는 없다.

출구번호를 알기 위해서는 지하로 들어가서 보는수 밖에 없다.
결국 지하로 내려가서 출구 번호를 찾아서 다시 올라왔다.

이 나라 사람들은 불편하면 불편한데로 사는데 익숙해진 사람들인가보다.

집결장소에 오니 한국사람들이 꽤 모여 있다.
사람들이 다 모이고 도보로 대영박물관으로 고고씽~


드디어 도착했다.  대영박물관..  이 건물은 신그리스 양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외관이 마치 그리스의 신전같이 생겼다.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강철과 유리 지붕으로 덮힌 실내 홀이 나타난다.  바로 이곳이 그레이트 코트(Great Court) 이다.
노먼 포스터라는 세계적인 건축가의 작품이다.  가운데 원형 건물은 대영 도서관이다. 


마치 거미줄을 연상시킨다.  
노먼 포스터는 첫날 우리가 런던아이에서 본 총알 모양의 스위스 레 보험회사 건물을 설계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설계한 것은 모두 이렇게 거미줄 모양의 유리와 강철구조로 되어 있다.


그레이트 코트에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고, 판플렛을 팔고 있는데 한국어로 된 노란색 책이 눈에 띤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보았다.  우리가 여행을 떠난뒤 한국어로 된 첫 가이드 북이었다.  기념으로 하나 샀다. ^^;; 

대영박물관은 입장료가 무료이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을수 있다.
여행자를 위한 배려(?)를 잘 해주는 곳이다.  

워낙 전시된 유물도 많을 뿐 아니라 가이드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때문에 주요 전시물만
보고 지나간다.
이곳의 자랑거리라 하면 메소포타니아/이집트/그리스/로마 유물 정도이다.


메소포타니아 유물 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반인 반수 거상.. 좀 있다 들러볼곳이다.


우선 이집트관부터 들어왔다.  


온화하게 생긴 아멘호테프 3세의 두상.  가이드 말로는 이 사람이 전쟁을 싫어했고 외교적인 수완이 뛰어났다고 한다.


대영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중 하나인 로제타 석이다. 프랑스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던것을
영국이 프랑스 포로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받은 물건중 하나라고 한다. ^^


이 돌덩이가 바로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할수 있었던 열쇠가 되었었다.
물론 언어의 천재인 프랑스 학자 상폴리옹이 없었다면 그나마저 해독이 불가능 했겠지만 말이다.
그는 10대에 벌써 10개 언어를 정복할 만큼 언어에 천재적인 소질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소설로 더 잘알려진 람세스 2세의 흉상. 
가슴의 구멍은 프랑스 군이 운반을 위해 뚫은 것이라 하는데. 영국은 구멍이 없이도 운반이 가능했다고..
우리는 프랑스 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해 가슴의 구멍을 그대로 두었다는 얘기가 있다.


메소포타니아 관 입구에서~  반인 반수의 석상 앞에서..  이 석상은 신아시리아 시대에 만들어졌다. 기원전 800~900년 사이



반인 반수의 석상은 특히하게 다리가 5개이다.  앞에서 보면 2개 옆에서 보면 4개처럼 보이게금 만들었다.
이 동상은 사신으로 오는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주기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얼굴은 당시의 군주의 얼굴을 본따서 만들었고, 군주에게는 황소의 힘과, 새의 빠름, 인간의 지혜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고 한다.


신 아시리아관에는 부조의 형태의 유물이 많이 있었다.


이들의 글자는 대부분 군주의 치업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석고를 이용한 것들이라 전 세계적으로도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귀중한 유물이라고 한다.


특정한 모티브를 가지고 길게 형상화 되어 있다.


군사작전에 대한 묘사가 되어 있는 유물이다.  모두다 아슈루나시르팔 2세에 대한 공적을 나타낸 것이다.
이 유물은 물속을 헤엄쳐서 성에 잠입하고 있는 모습이 부조로 형상화 되어있다.


역시나 같은 군주 아슈루나시르팔 2세가 사자 사냥을 하는 모습니다.


하반신이 마비된 모습을 현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다고 가이드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부조.
사자 사냥의 마지만 숨통은 군주만이 끊을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군주가 마지막을 장식할수 있도록
사자들을 빈사상태로 만들어 놓는다고 한다.



반인 반수 석상을 가까이서 보면 그 크기에 쉽게 압도될수 있다.



대영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엘긴스 마블이라고 불리는 그리스 페르테논 신전의 석상들.
페르테논 신전은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신전이다.


그리스에서 끊임 없이 반환 요청을 하고 있는 유물이다.  지난 그리스 올림픽때는 잠시 대여만이라도
해달라는 부탁까지 거절했었다.  빌려주면 받을수 없을거라 생각했나보다. ^^


가운데 남자는 주신 디오니 소스로 추정되고 있고 팔은 술잔을 잡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셀레나 여신을 끌던 쌍두마차의 말들..


가운데는 세명의 여신으로 추정되는 석상들 .헤스티아, 디오네, 아프로디테


복잡하게 얽힌 말들의 모습.  역시나 페르테논 신전을 장식하던 부조물이다.
이 유물을 가져온 엘긴아라는 사람은 영국의 터키 대사였고,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던 터키에 부탁을해서 싸그리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스로서는 두고두고 이를 갈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다시 이집트관으로 왔다.  거의 인간의 형체가 보존되어 있는 미이라의 모습니다.
수천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이유를 알수 없다고 하는 미스테리한 형상이다.


역시나 미이라 안에 남아있는 유골들..


이 미이라 안에는 인체의 모습이 그대로 있다고 한다.


미이라 옆에 같이 있었던 조각상들인가보다.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던 사자의 서. 왼쪽 흰색옷을입은 사람은 죽은 사람. 그를 데리고 가는 저승사자는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이누비스 신, 그리고 중앙의 저울을 다는 사람은 호르스 신, 그 위에 14명의 심판관들이다.
저울의 좌측은 죽은자의 장기, 우측은 깃털인데 부활을 하려면 이 저울이 수평을 이뤄야 한다고 한다.
제일 오른쪽은 지하를 관장하는 오시루스 신.


워낙 방대한 박물관이라 이정도로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한국관으로 이동했다.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스코틀랜드에서 입국거부만 안되었어도 박물관에 한번은 더 올수 있는 시간이 되었는데 말이다.


한국관 입구의 모습이다.


우리눈에 익숙한 빗살무늬 토기.



기와


대영 박물관에서 유일하게 여름철에 에어컨이 가동되는 곳이 바로 이 한국관이고 이 목조 가옥을 보존하기 위해서란다. ^^


바둑판과 바둑알이다.  이런것도 전시를 한다.



기와집 옆에는 이렇게 옹기가 놓여져 있다.


서양사람들에게는 저 창호지 문이 굉장히 신기하고 신비롭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앞에는 조선시대 백자가 보인다.

다소 수수하고 평이한 전시관이다.  조금더 화려하고 멋진 유물들도 많을텐데 약간 실망을 했는데
가이드 말에 의하면 사실상 너무 화려하고 멋진것들은 중국이나 일본것들과 차별이 안되어서
그들의 문화와 차별화된 우리 독특한 것을 찾다 보니 다소 수수하고 투박한 백자나 기와집 등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관에서 내려와 로비쪽으로 이동한다.


1층에는 특이한 것이 전시가 되어 있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알약, 캡슐 같은거다.


알고 보니 이 많은 알약과 주사가 1사람이 죽을때까지 복용하는 양이라고 한다.
우리는 실로 엄청나게 약을 많이 복용하는 거 같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네셔널 갤러리로 간다.
그런데 점심을 먹기 위해 우리가 이동한 장소는 ... 레이스터 광장. 우리가 뮤지컬 표를 사기 위해
매번 갔던 TKTS가 있는 바로 그곳이다.
하긴 이곳에서 네셔널 갤러리는 바로 지척에 있으니 뭐~~~
 



레이스터 광장도 새로 리모델링을 하는 듯하다. 
여러가지 조성안을 가지고 주민들이 투표를 하게끔 되어 있다. ^^



광장 앞의 모습들..



뮤지컬 상영 안내판이 있는 TKTS다.

네셔널 갤러리 내부는 찰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가이드의 설명에만 집중할수 있어 나름 좋았다. ^^

가이드 투어가 끝나고 나니 벌써 저녁... 그리고 상당히 피곤하다.
역시나 박물관이나 미술관 투어는 기본적으로 걷는 양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있다.

내일의 일정때문에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는 것으로 하였다.


‡ 오늘의 이동루트

숙소 - 까딸루냐 광장 - 대성당 - 왕의 광장 - 바로셀로나 시청 - 람블라 거리 - 레이알 광장 - 보께리아 시장 - 까사 바뜨요
- 까사 밀라 - 구엘공원 - 사그라다 파밀라아 성당

- 금일 숙소 : 까사블랑카 민박 in Barcelona
- 차랑 이동거리(금일 0 km, 누적 7,520 km) 
- 이동경로(유로 자전거 나라 바로셀로나 시내투어, 도보+버스)






오늘은 유로 자전거 나라 여행사에서 바로셀로나 시내 투어를 신청하였다.
집결지는 까딸루냐 광장이다.

기아 자동차 마크가 잘보이는 이곳은 람블라 거리의 시점 까딸루냐 광장(Plaza do Cataluña)
기아 모터스 간판 아래가 우리의 집결 장소


까달루냐 광장은 바로셀로나의 메인 광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


광장에는 아침 일찍(?) 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까탈루냐 광장에서 꼭 가봐야 할곳은 바로 엘 꼬르떼 잉글레스(El Corte Ingles)  백화점. 스페인 최고의 백화점으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도 봤다.


시간이 좀 남아서 광장을 둘러보고 우리는 집결장소에 나가니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가이드와 인사를 하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 기다리다가... 
집결 시간이 조금 넘으니 일행들이 모두 도착..  역시나 어디를 가도 코리안 타임은 항상 존재한다.
먼저 람블라 거리에서 가까운 고딕지구로..  

어제 왠만한덴 다 해집구 다녔는데 -_-



어제 왔었던 대성당.. 오늘도 또 왔다.


우리나라는 공사장 한쪽 옆에 조그맣게 그려있을 조감도가 실 사이즈로 벽위 차단막에 그려진다. 
스페인어로 되어있어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텔레포니카라는 회사가 이 성당의 보수공사를 지원한다고 되어 있는 듯..
텔레포니카(Telefonica)는 유럽 전역에 있는 이동 통신회사다. 
우리나라로 치면 LG텔레콤, KT, SK텔레콤 같은거겠지..


대성당 뒷편으로 가면 유명한 왕의 광장(Plaça del Rei)이 나온다.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돌아왔을때 당시 이사벨 여왕이 저 계단위에서 콜롬부스를 맞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저 계댠위에 서서 여왕의 포즈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여왕의 부부가 묵었다는 방..  콜롬부스가 여왕 부부를 처음 알현한 장소는 그라나다 왕국을 내몰기 위한
전초 기지였던 꼬르도바(Cordoba)..  였고..  콜롬부스가 돌아왔을때에는 이미 스페인에서 이슬람 새력을
내몬 뒤였다.



중세의 거리의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딕거리..  숙소 주인아저씨의 말씀으로는 이처럼 보존이 잘된
거리는 유럽에도 몇 안된다고 하신다.

우리는 그런 곳만 골라가서 그런지 이런 풍경은 자주 본듯 한데.. ^^


왕의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로셀로나의 명물 추러스와 핫초콜렛이 유명하다고 하는 곳..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지에서 쉽게 볼수 있는 추러스가 이 동네 음식이었군.. 


배고플때가 되서 그런지 빵 가게에서 빵들이 나를 부르는 듯 ^^


시청앞에 왔다. 스페인 국기 옆에는 까딸루냐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시청이 있는 광장 그늘에서 잠시 스페인 왕실 얘기를 재미있게 해주는 가이드 아가씨..


스페인 어로 Hotel은 시청을 뜻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호텔도 Hotel이라고 표시해서 혼동하게 해서 문제지만..


유명한 초콜렛 가게라고 한다. 


레이알 광장(Placa Reial)에 왔다.  어제 플라맹고를 싸게 봤던 바로 그..  (어제의 아픔이 또다시 생각 난다. )
사진속의 가로등은 가우디가 설계한 것이란다.  원래 공모 당시에는 바로셀로나 전역에 적용하려 했는데..
실제로는 이곳 광장 2개에만 설치 했다고 한다. 



람블라 거리(La Lambla) 예전에는 이곳이 하천이었나보다.. 복개공사를 해서 이처럼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 되었다.
'람블라' 라는 말은 아랍어로 '하천이 흐른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문화의 거리 답게 바닥 타일도 특색있게 조성해 놓았다.


람블라 거리 중간에 있는 보께리아 시장(Boqueria) 시장, 바로셀로나의 유일한 제래시장이다.
사실 유럽을 돌아보다 보면 제래시장을 거의 볼수 가 없다.   있어도 정말 작다..  우리 동네의 시장 보다도 훨씬 작은..


스페인 사람들이 죽고 못산다는 하몽..  고기를 소금과 향신료를 이용해서 절여 만든 햄이다.
콜롬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것도 당시에 금보다도 비쌌던 후추와 같은 향신료를 발견하러 간것..


시장에는 특이하게도 초콜렛 가게가 있다.  우리는 초콜렛은 제과점 한켠이나 마트에서만 살수 있는데..
유럽에서는 초콜렛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이  꽤 있다.


이쁘게 생긴 초콜렛이 꽤 많다... 도도는 초콜렛을 좋아하기에 더더욱 관심이 가는 듯 하다.
사실 장기 여행을 떠나게 되면 초콜렛처럼 비상 식량이나 에너지 충전을 위해 좋은 것은 없다.  덕문에 여행 내내 초콜렛은
실컷 먹었다.


여러 모양의 초콜렛과 사탕을 팔고 있다.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은 2유로 짜리 즉석 조각 과일..  1유로 짜리 과일주스도 많이들 들고 다닌다.


1 kg 단위로 팔고 있다. 


과일을 만지지 않고 눈으로만 봐야 한다.  만지면 주인이 뭐라고 한다.  과일을 만지면 빨리 상하기 때문이다.


가이드 투어는 바쁘게 움직여야 하기에 일단은 눈으로만 돌아보고.. 나중에 다시 올거라고 다짐하는 도도,, 
뭐 재래시장을 천천히 돌아봐야 한다나?


람블라 거리의 보도블록은 물결모양으로..  이곳이 예전에는 물이 흐르던 곳이라는 걸 형상화 한것인가?


다시 까딸루냐 광장으로 되돌아 왔다.   사진은 엘 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

까딸루냐 광장에서 버스를 타고 그라시아 거리쪽으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린곳은 가우디가 설계한 '까사 바요뜨'가 있는 곳

이곳에서 일행과 잠시 헤어졌다..  
사람들이 가이드를 따라 식사를 하러 가고 도도와 나는 그라시아 거리를 둘러보았다.
그라시아 거리는 바로셀로나의 명품 거리로 유명한 곳.. 

가이드 투어는 단독 행에 제약이 있기에..
점심시간 동안 도도와 같이 TOUS 매장을 찾아 갔다가 집결장소로 가기로 했다.
첫날에 비행기를 허둥지둥 탄 덕분에 목걸이를 찾지 못하고 왔었기에..(D-1 참조)
혹시나 같은 모양의 목걸이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엘꼬르떼 잉글레스 백화점과 그라히아 거리에 토스 매장을 찾았는데..
유로화가 비싸서 그런지 우리가 한국에서 구입한 가격의 1.5배..
또 다시 도도의 타박이 시작된다.

'괜히 찾아갔어, 괜히 가격 물어봤어 ㅠㅠ' 

까사 바뜨요(Casa Batlló)는 말그대로 바뜨요라는 사람의 집이다. 
당시의 무명 건축가였던 가우디에게 공사를 맡겨서 만든 집이다.
이 집에 반한 밀라라는 사람 역시 가우디에게 자기 집을 건축 의뢰하게 되었다.


현재 이집은 개인 소유로 되어 있으며 입장료가 16유로나 된다. 
너무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닌가 싶을정도로 비싸다.   당연히 우리는 들어가지는 않았다.


밑에서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그라이사 거리를 건너서 사진을 찍었다.
대충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건물..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가우디는 건물 외관에 이처럼 십자가를 빼먹지 않았다.
현재 성인으로 추대 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 외장을 타일을 깨서 만든 었고, 발코니 모양은 마치 해골을 연상키도 한다.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에게는 별 어필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물론 구엘이나 밀라 같이 특이한 감각을 가진 사람만이
가우디의 진가를 알아봤을뿐...


그라시아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였다. 
까페를 연상시키는 내부 인테리어..  화장실 사용이 어려운 스페인에서는 맥도날드가 딱이다.


까시 밀라(Casa Mila)에 왔다.  물결모양의 외관과 특색있는 굴뚝이 특색있는..


특색있는 굴뚝.. 중세시대의 기사들의 투구 모양을 형상화 한것들이라 한다.
가난한 여행자들은 이처럼 사진의 줌을 이용할수 밖에 없다 ㅠㅠ


옥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데.. 입장료가 역시 비싼편.. 
그래서 그런지 올라간 사람들은 쉽게 내려오지 않는듯..^^ 


까사밀라의 발코니는 해초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옥상에 자세히 보면  역시나 이건물에도 십자가 형태를 만들었다.
당시에 스페인의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고 특히나 카톨릭에 대한 전반적인 반감이 많아서 국민들의 테러의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밀라는 가우디에게 제발 십자가 모양을 빼달라고 했는데.. 가우디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밀라는 사업도 어려웠지만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가우디가 괘씸해서 돈을 지급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결모양의 외벽..돌로 만들어져서 현지에서는 La Pedlera(채석장)이라 불린다.


미지급된 돈을 받기 위해 가우디가 소송까지 걸었다고 한다.
하지만 밀라의 사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결국은 이 건물은 은행의 소유가 되었다.


그라시아 거리에는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 외에도 특색있는 건물이 많았다.
까사 밀라 길건너편에 있는 빌딩..


까사 바뜨요 근처에 있는 건물인데 왜 철조망 같은걸 감아두었는지는 모르겠다.
막눈인 내가 보니 그다지 멋있는 것도 모르겠는데..


까사 바뜨요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로 했기에..  도도와 나는 그리로 이동..

까사 바뜨요 근처에 있던 제과점..   


키로그람당 32유로인 젤리..  동네가 동네인 만큼 비싸기도 하다.


우리나라와 달리 성인용품점이 눈에 잘보이게 디스플레이 되어 있다.


까사 바뜨요 뒷쪽으로 돌아가면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뒷 마당을 구경할수 있게 되어 있다.


사람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도 참 많이들 들어왔구나..  


까사 바뜨요에 앞에 왔다.  가이드 아가씨가 혼자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까사 바뜨요와 까사 밀라에 선택 입장해서 구경중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
왜 벌써 왔냐고 물어보기에 들어가지 않고 외관만 보고 왔다고 얘기했다.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어제 소매치기 당한 얘기, 여태까지 지나왔던 우리의 여행지 얘기 등을 했다.

소매치기는 이곳에서는 큰 죄가 아니라고 한다.
'경제도 어렵고 한데..  같이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라는 생각이
이곳에서는 일반적인 사고 방식이라고 한다.
그래도 마드리드에서는 거리마다 수많은 경찰들이 눈에 띠었는데..
이곳 바로셀로나에서는 사람 많은 람블라 거리에 조차 경관을  보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다 집합하자 이제 구엘공원로 이동~~ 
빠른 이동을 위해 버스로


구엘 공원에 들어오니 돌로 쌓아서 만든 다리ㅏ가 눈에 들어온다.


구엘 공원은 가우디를 후원했던 구엘이란 사람이 가우디와 손잡고 만든 대규모 주택단지..
넓은 대지위에 분양된 집은 달랑 3집 밖에 없어서 나중에 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하게 되었다.
그나마도 분양 받은 두사람은 가우디와 구엘이었고 나머지 한명은 가우디의 친구였다고 하니..
실제로는 분양율 제로의 완전 망한 주택 단지인것이다. 


돌로 만든 다리가 위태로워 보여서 건설 직후에는 아무도 다리 밑으로 지나다니지 않았었다고 한다.
오로지 가우디만이 이 길로 산책을 했다고 한다.



이 집은 가우디가 분양 받은 집이다.  현재는 가우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는 매우 검소하게 생활했고 상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건축할 시에는 그 도가 지나쳐
성당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공원 중앙에는 이처럼 넓은 광장이 있다. 뒷편 붉은 건물은 구엘 저택이다.
구엘의 딸은 이 공원을 미국의 부호에게 팔려고 했는데 그 미국사람은 이 공원 자체를 해체해서
고스란히 미국에 옮겨놀려고 시도를 했다.
당연히 스페인에서는 자기네 문화유산을 미국으로 옮겨 가는 것에 대해 많은 매체에서 떠들기 시작했고 곧
여론이 안좋아 졌다. 
그 딸은 고심끝에 돈보다는 명예를 택하려 모든 판매 계획을 백지화 하고 이 공원을 시에 기증후 무료로 개방하였다.
저택 역시 학교로 사용할수 있도록 기증했다.
덕분에 지금 저 건물은 초등학교로 사용중이다. 
이 공원 자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기에 저 학교의 학생들은 세계 유일의 문화유산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이다.  
스페인의 교과서에 이 사실이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실리기도 했다.



광장 가에는 사람들이 편히 쉴수 있도록 벤치를 만들어 두었는데 .. 그 길이가 길기때문에 기네스북에
등재 되었을 정도라고 한다.


나무 수종 하나하나, 돌로 쌓은 벽돌 하나하나 가우디의 손길이 닿은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우리도 가우디가 만든, 유네스코에 등재된 그 벤치에 앉아보았다.  허리 부분은 둥굴게 튀어나와 있어
앉아 있으면 허리가 펴지며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광장 지하에는 대형 수조가 있어서 빗물을 받아 여과하여 상수도로 공급하였다고 한다.


마치 그림 형제가 지은 동화속의 과자의 집처럼 생긴 관리동.. 


광장 지하로 물이 흘러 들어갈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건물 역시 관리동인듯..  정문을 지키고 있는 건물들이다.


관리동 뒷편 멀리 지중해가 보인다. 



가우디는 이처럼 타일을 깨서 만드는 방법으로 이 단지를 조성했다.  그래서 인부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우리 민박집 앞에 있는 바로셀로나의 랜드마크중 하나인 포트 올림픽 쌍둥이 빌딩.
구엘공원에서 한눈에 보인다.


한쪽에는 장사치들이 이쁜 머리삔을 팔고 있다. 


공원의 맨 위에는 구엘과 가우디 외에 한사람 더 분양 받은 그 사람의 후손이 아직도 살고 있다고 한다.


돌담.. 그리고 종유석 처럼 튀어나온 천정..  대단한 생각이 든다.


가우디는 건축의 모든 아이디어를 자연에서 찾았다.  파도를 형상화 한 교각.. 대단하다는 생각에 앞서서.. 
조금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뭐 하긴.. 가우디를 가르쳤던 스승은 가우디에게 그는  천재 아니면 바보  둘중에 하나일거라고 얘기했다고 하니..


기둥 역시 평범하지 않게 하나의 예술품을 연상시킨다.  야자수 모양의 기둥과 머리에 물을 지고 가는 여인의 모습이
보이는가??


저 끝쪽에는 토네이도를 형상화 한 기둥도 있다. 



아까 우리가 벤치에 앉아있었던 광장 아래는 이 처럼 생겼다...  기둥의 경계 높이가 일정해 보이지만 원근법을 적용해서 그 착시현상으로 일정해 보이는 것이다.    실제로는 뒤로 갈수록 높아진다.



천정에는 역시나 타일을 깨서 만들었는데 따일 뿐아니라 병을 깨서 붙여 놓기도 하고 접시를 깨서 붙이기도 했다.


깨진 접시가 붙어있는 천정..


깨진 병도 붙여 놓았다... 당시에는 이런 타일을 모두 북아프리카에서 수입했고 매우 비쌌는데.. 
주로 깨진것을 얻어와서 붙였기때문에 건설비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멀정한 타일을 사서도 일부러 깨서 붙이는 바람에 인부들의 원성을 샀다고..
왜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일을 만들어 시키는 상사들이 있지 않은가 ^^



정문쪽으로 아래로 내려오면 이처럼 도마뱀 형상의 조형물이 있는데 사람들이 이곳에서 기념 찰영을 하려고 붐빈다.


하여튼 사람들이 줄서 있으니..  눈치껏 빠른 행동 필수..


까딸루냐 깃발과 개..  수도 꼭지 모양 하나도 신경쓴 모습이다. 


멍쩡한 타일을 이처럼 깨서 붙였다고 한다.


관리동 위에 버섯모양의 탑...


정문에서 보는 구엘공원..  정면 기둥위가 아까 우리가 벤치에 않아 있던 광장이다.



여러번의 눈치와 재빠른 행동 끝에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한  도도..
우리 일행을 벌써 저만치 갔는데.. 


일행들이 간쪽으로 와보니 우리를 두고 사라졌다.  한참이나 헤매고 찾다보니 겨우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


구엘공원에서 버스를 타고 내린곳은 바로 산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앞..


산파우 병원(Hospital de Sant Pau) 역시나 어제 우리가 왔던곳, 이 병원을 설계한 건축가는
가우디의 스승인 도메네크 이몬따네르.. 평상시 엉뚱한 면이 많고 독선적이었던 가우디에게는
적들이 많아 스승과도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는 못했다고...


병원에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쪽으로 걸어간다.


가우디 사후에도 건설을 진행되고 있는데 ..  사진에서 보이는 쪽이 가우디가 생전에 만든 부분이다.
예수의 탄생에 대한 내용이 있는 면이다.


예수와 마리아, 요셉의 가족의 조각..  이 조각에 있는 인물들은 가우디 주변의 인물들을 뽑아서 석고본을 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표정이나 몸이 굉장이 섬세할수 밖에 없는데..
심지어는 간난 아이조차도 실제 병원에서 죽은 아기를 가져와 사용해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정말로 천재와 미치광이는 종이 한장의 차이라는 얘기가 맞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 예수의 탄생과 성장에 대해 내용인데 특이한것..
오른편에 왕이 태어났다는 예언을 듯고 예루살램에 있는 갓난 아이들을 죽이러 다니는 병사가 보이는 가??
이 병사는 특별히 공모를 해서 사람을 뽑아서 그 형상을 석고로 본 떠서 만들었는데 그 사람의 치명적인 단점은
발가락이 6개였다고 한다. 
가우디는 조각할때 그것을 고쳐서 할 생각으로 그 사람을 뽑았는데.. 개념없는 석공이 발가락을 6개로 그냥
두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예수의 탄생 면에 천상으로 올라간 예수가 마리아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것을 조각해 두어서 
생뚱맞다고 생각했는데.. 개신교와 카톨릭이 틀린부분이 바로 이 내용이라고 한다.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는 신격화 되어 있지 않은 반면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도 신격화 되있어서 나중에 하늘에서
성령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가우디는 일부러 예수의 탄생 면에 이를 형상화 함으로써 카톨릭의 독실한 신자임을 강조한듯 하다.   
아래 부분에 튀어나온 것들은 모두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것으로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한다. 


성당 옆에 있는 이 아파트는 언젠가 성당이 완성되면 없어질 건물.. 
이 아파트 자리까지 성당이 건설된다고..  하지만 이 성당이 언제 완성 될지 모르니 ...

하절기에는 바로셀로나 시내 투어가 몬주익 언덕까지 가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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