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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일 숙소 : 호스텔 아카데미카(in Helsinki)
◎ 금일 이동루트
환경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무공해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분명 트램은 운송능력으로서 한계가 있을 듯 하다.
그런 연유로 전차가 서울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 건물은 1992년에 디자인 공모전을 통해 미국의 유명 건축가 스티븐 홀(Steven Holl)이 500명이 넘는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선된 작품이다.
말련에는 회고록을 집필하기 위해 스위스 몽트뢰에 가서 살기도 했다.
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Carl Gustaf Emil Mannerheim) 칼 구스타프 만네르하임(Carl Gustaf Emil Mannerheim)은 러시아의 기병대 학교 출신으로 러시아의 군인이었다가, 핀란드의 최고 지휘관으로 압도적인 병력의 차이를 극복하고 소련으로 부터 핀란드를 지켜낸 인물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켜내기 보다는 겨우 버티다, 소련과 협정을 잘 맺었다 표현이 적합할수도 있다.) 당시의 전력을 비교해보면 병력 30만-150만/ 탱크 30대-6,500대 /항공기 110대-3,900대 의 말도 안되는 전력의 차이를 보였다. 당시 소련으로 부터 핀란드를 지켜낸 원동력은 소련의 방심, 만네르헤임의 탁월한 지휘력, 애국심, 그리고 가장 힘이 되었던 것은 추은 핀란드의 날씨였다. 발트해 연안국과 폴란드를 너무나 쉽게 무력으로 굴복 시켰던 소련군인 만큼 핀란드 역시 너무나 쉽게 보았던 것이다. 후세에 소련과의 그 치열했던 전투를 배경으로 한 <겨울전쟁(Winter War)>이라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만네르하임은 이러한 공적을 뒤로 업고 대통령에 취임하기도 했으며, 핀란드 국회는 그에게 <핀란드의 원수>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서울에는 충무로, 을지로 가 있다면, 이곳 헬싱키 중심부에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만네르하임 거리> 가 있다. 그의 기마상이 있는 키아스마 박물관 역시 만네르하임 거리에 있는 건물중 하나이다. |
이 역에는 나름 특별한 것이 있다.바로 15평 정도의 대통령 전용 라운지가 있다는 사실..
대통령궁과 마찬가지로 이 라운지 역시 러시아 황제를 위한 시설로 만들었지만, 핀란드 독립 후에는 대통령이 사용하는 시설로 바뀌었다.
헬싱키 중앙역과는 지척지간에 있는 건물이다.
물가 비싼 북유럽에서 모처럼 허리띠를 풀고 맘껏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안타깝게도 내부 개장을 하지 않는 시간이었기에 내부를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다른곳을 먼저 들렀다가 다시 오기로 했다.
핀란드는 이전에 러시아의 속국이었고, 러시아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러시아인을 위한 기념품들이 눈에 많이 띤다.
구 의회 건물(The House of the Estates)인데 예전에 국회가 생기기 전 각 계층(귀족, 성직자, 시민)의 대표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던 곳이다.
인근에 있는 정부청사 별관정도일까..?
(가져가기도 편하고)
우리도 관광객들 틈에서 그들의 음식을 맛보고 싶었지만..
그 광경을 보고 여기서 뭔가를 먹을 생각을 바로 버렸다. -_-
재래시장 구석구석 돌아보고 난뒤 우리는 하얀 빌딩 뒷편에 있는 교회를 가보기로 했다.
오랫동안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이곳에 남아있을수 있었다. 물론 핀란드인의 대부분은 개신교인이다.
붉은색 벽돌은 러시아가 스웨덴과의 전쟁의 승리를 기념으로 올란드 요새에서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한다.
이 성당은 서유럽과 북유럽을 통틀어 가장 큰 동방정교회 건물이고, 무료로 입장이 가능한 덕에 연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다녀간다고 한다.
이곳 북항구는 마켓광장이 있는 남항구 쪽보다 조용하고 정적인 느낌이 드는데, 대부분 화물용 선박이 주로 이용한다고 한다.
아무리 유럽사람들이 옛것을 보존하려고 노력 한다지만, 한때는 이 나라를 지배했었고, 서로 총칼을 겨누웠었던 국가인데 이런 동상들을 그대로 남겨두는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원래 헬싱키의 개국의 영웅인 만네르하임의 동상으로 교체하려고 했다가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중앙청 건물도 헐어낼 때 이러한 논란이 있었다.)
바로 이 교회가 종교개혁자였던 루터가 창시한 루터교의 총 본산이고, 그가 이 곳의 주인공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루터 자신은 교회에 자신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단지 <크리스찬>으로 불러달라고 했지만,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과 그 반대세력 사람들에 의해 루터교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결국 본인을 빼고는 모두 그 명칭을 원했던듯.. ^^)
루터의 친구이자 종교개혁의 동지였던 아그리콜라(Agricola)..개신교와 카톨릭 사이에 잠정적인 종교협정을 작성할 3명의 신학자중 한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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